중학생 20여명을 데리고 구좌읍 하도리 별방진성을 찾은 적이 있다. 우리고장 역사유적 탐방 프로그램 일정의 하나였다. 성의 축성연대와 별방진의 역할, 성의 구조 등을 설명했다. 성벽에는 치성(雉城)과 옹성(甕城)이라는 부분이 있어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을 했다.
치성은 성벽 바깥쪽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을 말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치성을 설치하면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양쪽 치성과 성벽 위 등 삼면에서 활로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가 있다고 한다. 옹성은 성문이 있는 곳에 둥글게 벽을 쌓아 성문이 직접 적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는 방어 구조물을 말한다. 항아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옹성이라 부른다. 함락하기 어려운 요새를 흔히 철옹성이라고 하는데 그 말의 유래는 바로 옹성에서 나왔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답사팀 중 절반을 공격팀으로 나머지를 수비팀으로 하여 치성과 옹성의 쓰임새를 설명해 주었다. 창검으로 승부를 가르는 옛날식 전투라고는 사극에서 본 것이 모두인 필자로서는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러저러하지 않았을까 설명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청소년들은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성벽 위를 걸어보게 하였다. 문제가 발생한 건 이때였다. 조금 전 치성과 옹성의 활용도를 열심히 청취하던 한 학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질문을 날렸다. 공격군이 굳이 성벽에 가까이 접근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성벽 위에서 방어하는 군사가 아무런 엄폐시설 없이 그대로 적에게 노출되어 있는데 멀리서 활로 쏘면 될 것 아니냐, 즉 성벽 구조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필자로서는 그 학생의 질문에 합리적인 답변을 해 줄 수가 없어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 사실이다. 선생님은 전쟁전문가가 아니어서 좀 더 검토한 뒤 다음에 알려주겠다, 이런 정도로 상황을 모면했던 것 같다.
며칠 뒤 역시 청소년 역사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림읍 명월진성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성의 구조를 면밀히 관찰하였는데 별방진성의 구조와 다름이 없었다. 즉 성벽 위가 평평하게 되어있을 뿐 적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할 수 있는 어떤 엄폐시설도 없었다. 이런 성벽이라면 수비군이 어떻게 적을 맞아 싸운다는 말인가. 다행히 별방진에서와 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어 곤란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필자에게 묘한 불신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극에서 본 성벽공략 전투 장면을 보면 수비군을 보호하는 엄폐시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주도의 성벽은 왜 그것이 없단 말인가.
몇몇 전문가에게 필자의 이런 의문을 물어 보았다. 그 대답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원래 적의 화살 등을 막는 여장(女墻)이라는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엉터리 복원이라는 것이었다.
복원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원래대로 다시 돌려놓는 것이라 돼 있다. 문화재를 원래대로 다시 돌려놓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증 절차 없이 외양만 그럴듯하게 만든다는 것은 복원의 의미를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영화세트장을 지을 때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짓는다는데 한 지역의 역사유적이라는 것이 이렇게 엉터리라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라는 말인지 묻고 싶다. 이웃나라의 역사왜곡을 탓하기 전에 우리고장의 역사왜곡부터 바로 잡으라고 말하고 싶다.
잘못된 복원이 비단 별방진성이나 명월진성 만이 아닐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문화재 복원사업이 말 뜻 그대로 제대로 복원이 되었는지 행정당국의 철저한 검증을 바라는 바이다. <권재효 지속가능환경교육센터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