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분열증의 리더십과 제주의 미래

[한라칼럼] 분열증의 리더십과 제주의 미래
  • 입력 : 2015. 12.22(화) 00:00
  • 편집부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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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라깡은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주체라고 보았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한 욕망의 추구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해석했다.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적 상태는 한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야심차게 출발한 원희룡 도정의 행보는 분열증에 걸린 환자를 보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비전과 정책의 엇박자는 난파 직전의 배처럼 요동친다.

원희룡 지사 취임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한 미래비전 용역이 구체적 모습을 드러냈다.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청정'과 '공존'은 제주의 미래 비전이며, 이에 따라 생태총량제, 해안변 그린벨트 등이 도입된다. 6대 부문별 기본구상안은 그 자체로 기존의 제주 발전 전략과는 전혀 다르다.

원희룡 지사는 이에 대해 "미사여구를 나열한 게 아니라 도정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용역 내용에 대해서 "기존 자료를 갖고 작문한 것이 아니라 제주도가 그동안 해왔던 실제 과정과 현실, 앞으로의 발전 전망과 그 과정에서 생길 문제점, 도민들의 주체역량까지 감안해 방법론까지 제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제주미래비전 연구용역은 도정철학이 집약된 새로운 도정 운용 방침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원희룡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공허하기만 하다. 도정철학은 지사의 말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관사유화 논란을 빚었던 부영호텔 건축심의는 제주도건축 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조건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중문 해안 절경의 사유화는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제주미래비전 연구용역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해안 경관의 공공성은 제주의 중요한 미래 가치 중 하나이다. 이번에 발표된 연구용역에서는 해안변 관리를 위해 '해안변 그린벨트'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주민생계유지와 관련한 소규모 건축행위에 대해서만 예외를 두고, '청정'과 '공존'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건축행위를 불허한다고까지 했다. 제주미래비전 연구용역이 원희룡 지사의 말처럼 '미사여구'가 아니라면 이번 부영호텔 건축심의는 부결됐어야 옳다. 그것이 경관 공공성을 추진하겠다는 도정철학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도정철학은 구체적 정책과 행정으로 실천될 때에만 도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도정 출범 이후 제주의 생태적 중요성이 수차례 강조됐지만 정책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행동 없는 정치적 레토릭만이 넘쳐난다. 정치와 행정은 다르다. 백번 양보해 정치적 레토릭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러나 행정은 다르다. 구체적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 행정은 신뢰를 잃는다. 18억 원이라는 거액을 들인 미래비전 연구용역이 도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정책적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실천 없는 비전 제시는 도민을 속이는 일이다. 지역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자는 더 큰 신뢰도 얻지 못한다.

미래비전 연구용역에 대해서 원희룡 지사는 "잘 모르시는 분들은 공항이나 대중교통은 도에서 발표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미래비전이 뒷북을 치고 있다고 하는 데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정책 비판을 정책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치환하는 화법이다. 설사 도민의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일 것이다. 원희룡 지사는 한때 대권을 꿈꿨다. 지금도 스스로 잠룡이라고 여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제주민의 마음을 얻는 심술(心術)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이무기도 되지 못할 듯싶다. <김동현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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