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미움 받을 용기라니?'

[하루를 시작하며]'미움 받을 용기라니?'
  • 입력 : 2016. 01.20(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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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미움 받을 용기가 있나요?"

질문이 답보다 좋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이 엉뚱한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남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랴. 그러나 일부러 미움 받을 용기라니? 제목이 관심을 끄는지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지난해 베스트셀러였다. 나는 행복한가? 안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미움 받을 용기'란 행복한 삶을 위한 역설이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해서 눈치를 보고 행동하는 건 자기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정욕구에 목마르다보면 남의 뜻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비굴해질 수 있다.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거짓과 체면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로 '인생의 거짓말'로 영혼까지 병들게 한다. 제목도 '미움 받을 용기'가 아니라 '당당해질 용기'라야 어울릴 듯하다.

스토리 설정도 신선하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청년과 철학자가 알프레드 아들러 심리학을 중심으로 인간심리의 핵심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이야기 전개도 희곡형식을 빌어 읽기 편하고 내용도 쉽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와 토론하듯 현상적 삶을 통찰하도록 일깨워 준다.

저자는 심리학의 주류를 이루어온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부정한다. 트라우마를 고착화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를 중시하는 목적론을 강조한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를 권고한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큰 공감을 준다.

세상 사노라면 좋은 일 궂은 일, 충격적인 일들, 실수나 실패로 점철된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의 시처럼 잊고픈 기억들이 마음자락에 눌어붙어 과거가 현재의 나를 조종하려 든다. 개인뿐 만 아니라 웃음이 사라진 요즘, 우리 사회 집단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하면 큰일이다.

사실 우리 선조들은 한(恨)의 정서를 품고 살아왔다. 외세에 짓눌림, 가난한 삶의 애환들, 그 슬픔을 해학으로 다스리며 아픔을 이겨왔다. 흥부전이나 춘향전 등 우리 고전에 스며있는 반전은 얼마나 통쾌한가. 옛 그림이나 노랫가락에도, 제주신화의 스토리도 한을 노래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을 풀어내는 해학들로 넘쳐난다. 요즘 유행인 100세 인생의 '~전해라' 버전은 이미 제주신화의 장수의 신 '명감사마니'에 못 미친다. 더 고품격의 한풀이 시조는 단연 황진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이를 두고 피천득은 동서고금 최상의 사랑시의 백미라고 극찬한다. 또한 세계 최고의 해학은 순수한 한국산이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보고 하는 말, '대사께서는 마치 돼지처럼 보이십니다 그려, 허허.'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대왕님은 부처로 보이십니다.' '아니, 부처라니요?' '돼지 눈엔 돼지로 보이고 부처 눈엔 부처로 보이는 법이지요!' 빛나는 한 마디! 이런 반전이 세상 어디 있을까? 이 정도의 기지와 유머라면 어떤 일도 이루어낼 수 있다.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감성이나 재주를 가진 문화민족이라는데 자부심을 갖는다. 멋져서 행복할 용기로 웃으며 살 일이다. <이경주 서귀포시민책읽기위원장·전 초등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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