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가치 모호·추상적 개념", "정체성 불분명·구체성 결여", "용역 중대결단 내려야", "문제점 나열 수준", "수준미달" 집중포화… 지난달 이후 제주지역 일간지를 장식했던 주요 표제어들이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런 부정적인 표제어들이 동원된 것일까. 다름 아닌 '제주미래비전' 용역 최종보고 내용에 대한 기사와 사설의 제목이다. 왜 호들갑인가하고 보고서를 들여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17억 원을 들여 도출해낸 제주미래비전이 과거와 현재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수립의 배경을 보자. 미래가치에 기반한 도민이 공감하는 일관된 계획·정책이 없기 때문에 기존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개선하고 미래 제주의 지속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여기에서 도민이 공감하는 일관된 계획과 정책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제주발전 계획이거나 정책이라고 가정한다면 제주는 1963년 '제주도 자유지역 설정 구상'에서부터 수많은 계획과 정책이 시행되어 왔고 현재는 '제1~2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2002~2021)'이 추진되고 있다. 비록 그 계획이 도민의 전적인 공감 속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돌과 바람의 땅, 절해의 고도인 제주를 아직 지켜야 할 것이 많은 '푸른 문화의 섬 제주'로 탈바꿈시켰다고 본다.
이어서 보고서는 비전 수립의 목표를 도민이 공감하고 핵심가치에 기반을 둔 미래비전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주민에게는 삼무정신과 조냥정신, 해민(海民)정신과 같은 일상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제주 특유의 중요한 정신적 가치가 있다. 삼무정신은 오늘날 안전사회(도둑 없음)의 기반이면서 성실과 근면의 자립사회(거지 없음)의 근간이다. 더욱이 믿음과 수용이라는 열린사회(대문 없음)의 징표이다. 한 끼니 밥솥에 들어가는 보리쌀을 한 움큼 덜어내 조막단지에 담아두는 조냥정신은 춘궁기 대식구의 허기를 때우는 지혜이자 절약정신이다. 해민정신은 중국과 러시아의 열길 물속을 드나드는 제주해녀의 강인함이며 동중국해와 오키나와 해역을 넘나드는 제주어부들의 진취적인 기상이다.
그러나 보고서 어디에도 지금의 제주를 있게 한 이들 가치를 새로운 가치로 진화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비전의 기반이 되는 제주의 핵심가치가 없거나 있더라도 도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보고 미래의 핵심가치를 '청정과 공존'으로 새롭게 제시했다. 조금은 어색하다. 청정과 공존이 비전인지 가치인지 어정쩡하다.
보고서는 이밖에 비전 수립의 성격을 주민참여형 계획이며 정책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 또한 비전과 계획의 개념이 뒤얽혀 혼란스럽다. 비전(vision)은 상상력과 통찰력을 뜻하기도 하지만 미래상과 미래의 전망 등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을 말한다. 그래서 비전의 설정은 현재를 기반으로 한 미래의 상황을 예견하는 것이다. 제주에는 현재 법정계획인 '제2차 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 진행되고 있고 현실에 맞게 계획 수정이 예정되어 있다. 수정계획에서 새로운 비전이 도출될 수도 있는데, 결국은 그렇게 해야 하는데 새로운 퍼실리테이션 기법에 의한 비전이라며 막대한 용역비를 들여 호들갑을 떤 이유가 무엇인가. <김성호 전 언론인·행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