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폭삭 속았수다

[한라칼럼]폭삭 속았수다
  • 입력 : 2016. 02.23(화) 00:00
  • 편집부 기자 su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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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제주도는 또 한 번 항공기 무더기 결항 사태를 빚었다. 폭설사태를 겪은 지 보름여만의 일이다. 이번엔 난기류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하늘길을 오가는 나로서는 최근 들어 더욱 빈번해진 기상악화에 애가 타들어간다. 10년 넘도록 제주살이를 해 왔지만 한 번도 방송에 차질을 빚은 적이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지만 강산이 아니라 하늘이 변했다. 32년 만의 폭설은 속수무책이었다. 25일 KBS 2라디오 '해피타임 4시'의 생방송을 위해 김포 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던 나는 사흘간 공항이 폐쇄되는 경우의 수를 두지 못해 발이 묶였다. 결국 제주에서 이원생방송을 진행했다. 전에 없이 폭설사태를 겪고 난 다음부터는 내가 제주도에 내려갈 때 마다 담당 피디가 묻는다. "날씨 괜찮은 거죠?"라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은 하지만 이상기후는 이제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올 초 제주를 포함해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한파는 글로벌 한파였다. 높아진 북극 기온이 북극한파의 차단벽 역할을 하는 제트 기류를 약화시켜 '혹한'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다시 말해 현 세대의 편의만을 위해 지구를 뜨겁게 데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상, 이상기후는 32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해마다 겪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제트기류가 더욱 구불구불해질 것을 대비해야 한다. 발 묶인 체류객들이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도록 도내 숙박시설을 항상 비워 놓든지 공항 근처에 8만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호텔을 지어 비상시에만 사용한다. 주변에는 각종 편의시설을 준비하고 내년이 될지 32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언제든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은 식품과 물품을 비축해 놓는다. 항공권의 가격차는 서비스의 질에 대한 합의다. 모든 항공사가 자동예약변경시스템을 도입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무리가 없는 금액을 책정한다. 도민들은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수도 전기가 끊기고 도로 결빙으로 가스를 공급받지 못해도 비상시에는 자원봉사자로 동원되는 훈련을 한다. 어떤가, 이 정도는 해야 '대응능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미비한 것들이 많았지만 완벽하게 대비하기에는 역부족인 천재지변이었다. 천재지변은 어느 한 쪽이 책임져야하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극복해야 하는 일이다. 도 관광정책과, 교통정책과, 지방항공청, 자치경찰단 등 유관기관의 근무자들은 입술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다. 기업 및 단체, 일반 시민들의 기증을 통해 물과 음식이 모였고 모자라던 모포와 매트, 응급구호세트, 무료 충전기 등 물품들도 곧 채워졌다. 부족한 장비로 사흘간 쉬지 않고 제설 작업을 한 인원들, 외부에서 폭설을 고스란히 맞으며 일한 자원봉사자들, 도민들의 훈훈한 미담들까지… 국민을 무사히 집으로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제주도이다. 폭설이면 으레 일어나는 등반객 사망사고도 없었고 1분37초마다 한 대씩 24시간 비행기를 띄워 이틀 만에 8만 명에 달하는 체류객 모두를 귀가시켰다. 그러나 거의 모든 육지의 언론은 비난과 비판만 쏟아냈다.

도내 한 기자는 스스로 '망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제주는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이다. 여행지에서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천재지변 안에서는 갑과 을이 있을 수 없다. 이번 폭설로 제주도민은 52억 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고생했다'는 한마디가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허수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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