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기획/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1.제주 식물자원 세계화 주역 타케 신부(상)
대구 가톨릭계가 타케 업적 재조명 선도
  • 입력 : 2016. 02.29(월) 10:24
  • 강시영 기자 sykan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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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 신부가 대구대교구청에 심은 왕벚나무. 사진=대구가톨릭대 정홍규 신부 제공

대구대교구청내에 왕벚 식재 계기
심포지엄·독립영화 제작 등 추진
최근 원 지사 만나 공동추진 제안
"도정·서귀포시가 적극 앞장서야"

 

세계가 주목하는 땅 제주. 세계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이자 다수의 람사르습지를 보유한 제주는 그 자체가 보물섬이다. 일찍이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제주를 주목했으며, 제주의 자연과 문화유산이 세상에 비로소 알려지기까지 많은 선각자들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왕벚나무 최초 발견자 타케, 한라산 구상나무 명명자 윌슨, 한라산 높이 최초 측정 겐테 등. 그러나 이들의 자취와 업적은 점점 잊혀지고 묻혀져 가고 있다.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타케신부.

 

 매년 3, 4월이 되면 왕벚나무가 이슈가 된다. 왕벚나무의 정체성과 자생지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고 심포지엄이 열린다. 세계적 자생지인 제주에서도 축제가 열리고 이런저런 이벤트가 마련된다. 지난해 4월에는 한라산 관음사 주변 야영장에서 왕벚나무 어미나무 명명식이 열려 관심을 모았다.

 제주 왕벚나무가 최근 대구에서도 화제다. 사연은 이렇다. 에밀 타케(Emile Joseph Taquet·한국명 엄택기(嚴宅基)·1873~1952) 신부는 1922~1951년 대구에서 성유스티노신학교장으로 재직할 당시 '제주도에서 왕벚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지금 거목으로 자란 이 왕벚나무 옆에는 타케 신부의 묘소가 있다.

타케 신부는 1902~1915년 서귀포본당 전신인 하논본당(당시 대구교구 소속) 제3대 주임을 역임한 프랑스인 사제로, 제주 사목 기간 식물학자로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1908년 4월 15일 관음사 인근에서 자생 왕벚나무를 발견, 유럽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타케신부 묘비.

 

 대구가톨릭대 사회경제대학원장 정홍규 신부는 타케 신부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에 심은 왕벚나무를 계기로 최근 타케 신부의 업적을 추적하기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 1월말에는 영남대 생명과학과 박선주 교수와 함께 제주를 찾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와 제주시 봉개동의 왕벚나무 천연기념물, 관음사 야영장 일대 왕벚나무 자생지를 둘러봤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내에 심어진 왕벚나무의 유래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정 신부의 노력으로 지난해 6월 대구시 중구 남산동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에서는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와 김찬수 제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등이 모인 가운데 현장조사가 벌어졌다. 대구 영남권 현지 언론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수령을 확인한 결과, '제주도에서 왕벚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타케 신부의 기록과 증언이 일치했다. 왕벚나무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찬수 박사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첫 발견한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사랑을 재확인할 수 있다"며 "추가 정밀조사가 필요하지만 타케 신부가 제주산 왕벚나무를 가져다 심은게 확실해 보인다"며 대구지역 가톨릭계와 정 신부의 열정에 감탄했다.

타케 신부의 묘지.



 정 신부의 타케 추적은 왕벚나무가 단초가 됐다. 최근에는 '제주 왕벚나무와 온주밀감의 에밀타케 신부'란 제목의 논문도 발표했다. 정 신부는 이 논문에서 타케 신부의 제주도 사목, 식물학적 업적, 온주밀감의 첫 도입 등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정 신부를 중심으로 한 대구 가톨릭계의 타케 신부 재조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정 신부는 지난 1월 원희룡 지사 등 제주도청 관계자를 만나 타케 신부의 자료를 전하고 교계, 대구시 등과 함께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 신부는 오는 4월초 대구 가톨릭대학 대강강에서 타케 신부의 식물학적 업적 등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을 연다. 타케 신부를 조명하는 심포지엄 자체가 처음이다. 정 신부는 "우선 왕벚나무가 꽃을 피우는 4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며 관련 독립영화 제작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케 신부가 100여년 전 제주에서 사목 기간 왕벚나무 등 수만 점의 식물표본을 유럽의 대학이나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매각함으로써 제주의 식물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식물학자들은 타케가 제주에 머물렀던 기간이 한국 식물분류학에 획기적인 계기가 된 때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제주는 그를 기억조차 하고 있는가. 제주도정과 타케 신부의 주 활동무대였던 서귀포시가 재조명과 기념사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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