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 (5)제1부 위기의 생태계

[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 (5)제1부 위기의 생태계
성판악 등산로 1600~1800m 구상나무림 원형 잃어
  • 입력 : 2016. 05.16(월)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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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라산 동릉 정상부에서 바라본 진녹색의 구상나무 군락지(위)와 2016년 현재 기후변화의 영향 등으로 고사목으로 하얗게 변해가는 구상나무 군락지(아래). 최근 4~5년간 한라산 구상나무림 고사 피해가 가속화되고 있다. 강경민기자

④ 구상나무 쇠퇴 충격의 현장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구상나무가 금세기 내에 한라산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요즘 한라산 생태계의 위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구상나무의 쇠퇴다.

한국특산인 구상나무는 한라산이 세계 최대규모의 서식지다. 광활한 공간에 대단위로 군락을 이룬 것은 한라산이 유일하다. 한라산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데는 구상나무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한라산 구상나무림에 이상징후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한라산 구상나무의 절반 가량이 말라죽은 것이다.

그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한라산에서도 최근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성판악 등산로 해발 1600~1800m 일대다. 한라산 취재진은 지난달 30일 전문가들과 피해현장을 다시 찾았다.

해발 1500m 진달래밭 대피소와 한라산 남벽 순환로와 돈내코 등산로 주변에는 띠를 두른 듯 만개한 털진달래가 장관이다. 번식력이 강한 조릿대에 위세에 눌려 예전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산상화원'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털진달래의 감흥은 이내 탄식으로 이어진다. 구상나무의 집단고사 현장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절반 이상 말라죽어 가지만 앙상
최근 4~5년간 고사 피해 가속 현상
백록담 분화구 내 자생지도 반토막
치수 발생 적어 개체수는 지속 감소
한라산 구상나무림 보존 비상상황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분포한 지역은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다. 그 면적이 795.3㏊나 된다. 성판악 등산로 해발 1600m에 들어서면 고사목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그 현상이 해발 1800m에 이르면 정점으로 치닫는다. 10여년전만해도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던 구상나무 숲은 이제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고사목이 되어 허옇거나 회색빛으로 변해버렸다.

한라산 구상나무숲은 2012년 제주를 강타한 '볼라벤' 등 태풍의 영향으로 그 피해가 컸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이 보고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2013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년간 한라산 구상나무 분포지 10개 지역 30개소를 대상으로 구상나무 생육동태를 조사한 결과다.

조사결과 ㏊당 평균 구상나무 개체수는 2028그루였으며, 이 가운데 54.1%, 1098그루만 살아 있고 나머지 45.9%, 930그루는 죽은 상태로 밝혀졌다. 등산로별로는 성판악코스 해발 1800m 일대가 1625그루로 가장 많았다. 구상나무를 제외한 다른 수종은 살아있는 나무가 전체 개체수의 91%인 것으로 나타나 구상나무림의 고사 피해가 극심했다.

전체 고사목의 20.7%가 2010년 이후, 37.9%는 5∼15년 전에 고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나머지 41.4%는 고사한 지 15년이 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2010년 이후 고사한 구상나무의 비율은 성판악등산로 해발 1800m 일대 39%, 성판악등산로의 해발 1650m 일대 32.6%, 큰두레왓 일대 29.9%, 관음사등산로 해발 1750m 일대 25%, 해발 1850m 일대 20.7%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 고사목의 주요 발생지역은 한라산 동북사면의 성판악과 관음사등산로 해발 1700~1850m 지역으로 지난 2012년 태풍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2000년대 이후 고사목이 급증하고 있으며 최근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윗세오름 일대(1590~1690m)의 경우 전체 구상나무의 67.2%가 고사목이다. 특히 어린나무의 발생은 고사목 발생에 비해 28%에 그쳐 한라산 전체 구상나무의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상나무 고사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백록담 내 구상나무도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미 50% 이상의 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2년전 이곳을 포함해 한라산 구상나무 고사현장을 전수조사했던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고정군 박사는 "전체적으로 한라산 구상나무림의 피해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2012년 태풍의 영향으로 구상나무숲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았는데 앞으로 비슷한 기상변화 등 돌발상황이 온다면 구상나무 쇠퇴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구상나무 살리기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때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강시영 선임기자·강경민·김지은·김희동천·채해원·강경태·강동민기자



서식지 생육기반 흔들… 갈수록 쇠퇴

잦은 태풍·집중 강우·온대 수종 확산 등 영향 피해 극심


한라산 구상나무 위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국립산림과학원 보고서(한라산 구상나무, 2015)에 따르면 구상나무의 조상은 과거 빙하기(신생대 3기)에 한반도까지 내려와 분포역을 넓혔던 한대성 수종이다. 이들은 간빙기에 다시 고위도 방향으로 후퇴했는데, 이 때 후퇴하지 못하고 고산지대로 피신한 식물 중 하나가 현재 한라산과 내륙의 고산지대에 남아있는 구상나무이다. 이처럼 고산 및 아고산대에 분포하고 있는 고산성 수목들은 서식처가 한정적이고 고립돼 있어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서식지 감소와 절멸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구상나무의 고사는 일반적으로 1990년대까지는 주로 구상나무의 노령화와 개체목 간의 경쟁 등 자연적인 고사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으나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에 의한 적설량 감소에 따른 바람(한건풍), 잦은 태풍과 집중 강우 등으로 생육기반이 악화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온난화로 온대 수종인 소나무가 구상나무 자생지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특히 2012년 태풍의 영향으로 2013년에 많은 고사목이 발생했다. 이런 대규모 고사는 강풍에 의한 뿌리 흔들림, 집중 강우에 의해 토양유실 등으로 생육기반이 약화됐고 겨울철 적설로 인한 나무 쓰러짐 현상 등의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기후변화에 의한 고사 및 생장쇠퇴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기상이변, 병해충 피해 가능성 등 구상나무의 고사원인이 다양해지고 이에 따른 피해도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 2011년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으로 평가했으며, 분포면적이 10㎢ 이하로 줄어들면 극심멸종위기종으로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산림청 희귀식물, 환경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지정돼 있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멸종되면 함께 자생하는 식물 약 145종의 동반 멸종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학계에 보고돼 있다.

취재진과 현장을 둘러본 고정군 박사는 "향후에도 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의한 고사와 생장쇠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 체계적인 보전을 위한 추진전략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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