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삶의 터전 지키려는 것이 님비?

[백록담]삶의 터전 지키려는 것이 님비?
  • 입력 : 2016. 06.06(월) 00:00
  • 현영종 기자 yjhye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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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요즘 '님비(NIMBY)'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4월 수도권인 지바(千葉)현 이치카와(市川)시에 사립보육원을 신설하려던 계획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무산됐다. 지역 주민들이 '아이들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진다'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치카와시에는 보육원 등록 대기 중인 어린이가 373명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9번째로 많다.

일본에서는 최근 1년 사이 보육원을 신설하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포기하거나 연기한 사례가 최소 10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보육정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가 않은 모양이다. 낮은 임금으로 보육사 충원이 쉽지 않은데다 지역주민들의 저항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님비'란 말은 지난 1987년 미국 정부가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래됐다. 미국 정부는 뉴욕 근교 아이슬립이란 곳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하자 3000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바지선에 싣고 장장 6개월 동안 9600㎞를 떠돌아 다녀야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엘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 등 미국 남부 6개주를 찾았지만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당시 해당 지역 주민들이 외친 말이 바로 'Not In My Backyard'였다. '내 집 뒷마당에는 안된다'는 뜻이다. 중남미로 방향을 돌려 멕시코, 벨리즈, 바하마까지 갔지만 역시 실패했다. 뉴욕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공평부담'이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특정지역에 혐오시설을 신설할 때는 도시 전체 차원에서 부담과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직접적인 현금보상과 함께 세금감면, 일자리 제공, 보험가입 등의 간접보상을 포함한다.

얼마 전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인 성산읍 온평리 주민들이 제주자치도청을 항의 방문했다. 온평리비상대책위원회는 원희룡 제주자치도지사와 면담 후엔 도청 기자실에서 항의문까지 내놨다. 온평리비대위는 특히 지난달 13일 제주자치도가 개최한 제주공항인프라확충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발언을 문제 삼았다. 당시 강의에 나섰던 국민통합위원회 소속의 한 교수가 제2공항의 갈등 성격을 님비로 규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원 지사는 "님비현상으로 언급한 발언은 도정의 입장이 아니라 한 학자의 생각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제주자치도 관계자 또한 "(제2공항 갈등 조정 방안에 대한) 발표 내용의 극히 일부분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제주자치도가 얼마 전 제2공항 건설과 관련 피해지역 주민들의 이주대책을 제시했다. 예비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이주대책 대상자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공사가 착공된 후인 2022년부터 이주택지를 분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주대상에는 공항주변 개발사업 지구내 편입가구를 비롯 소음피해 가구 등이 포함된다. 소음피해와 관련된 보상계획도 내놨다.

제2공항은 제주사회의 숙원이자 최대 현안이다. 그렇다고 지역주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일방적 희생을 볼모로 하는 정책은 결국 정부·지자체 또는 다중의 횡포로 점철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제2공항 신설로 인한 이익과 부담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 더욱이 지금처럼 주민들의 반발을 님비로 매도해서는 갈등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없다. 님비란 최소한의 불편·희생마저도 거부하는 현상을 이르기 때문이다. 집과 앞마당, 삶의 터전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주민들의 절규를 님비로 매도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진실한 소통과 함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갈등관리기구의 신설이 절실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영종 서귀포지사장 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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