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국내 이륜차 업계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대림자동차공업(주). 세계 유명 브랜드가 경쟁하는 이륜차 업계에서 국산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토종 기업이다. 체신청 소속 우편집배원의 발이 되고 있는 오토바이의 85%, 배달·택배업계에서도 비슷한 점유율을 자랑하며 이른바 '국민오토바이'로 사랑받고 있다. 점차 치열해지는 업계 경쟁속에 대림자동차는 미래 시장을 이끌어갈 전문경영인으로 지난해 말 제주출신 김방신 대표이사(57)를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김 대표는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주요 보직을 거쳤고, 한국후지쯔, 효성중공업 기전PU, 두산모트롤 등 주요 기업에서 활약한 전문경영인이다. 지난 24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대림자동차 서울사무소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실천

"짧은 시간에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저는 '사람중심의 기업경영'을 경영철학으로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첨단경영기법이 나와도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기업 경영은 어렵습니다. 요즘은 기업에 인재가 넘쳐납니다. 제가 '신의 손'이어서가 아니라 원래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직원들을 격려하고, 배려하고, 이끌어줌으로써 회사의 발전을 이뤄내게 합니다. 솔직히 오토바이에 대해 저보다 직원들이 훨씬 더 전문가입니다. 직원들이 회사에 헌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이해를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하면 회사의 발전은 저절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경영철학에 따라 그는 최근 대림자동차 창사 이래 최초로 무교섭 임단협을 이뤄냈다. 대림자동차는 2009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금속노조) 사업장으로 해마다 파업과 분규를 되풀이하면서 조업에 차질을 빚어왔었다. 대림자동차 대표로 취임한 이후 그는 회사 근무복 착용을 없애고, 직원들이 불편해 했던 여러 소소한 일들부터 처리해나갔다. 김 대표 취임후 7개월여 동안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그 진정성은 노조를 움직였다. 지금 김 대표와 노조는 함께 회사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동반자가 됐다.

대림자동차는 대림그룹 소속으로 1978년 설립, 3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이륜차 산업의 역사를 써 왔다. 초기에는 이륜차로 시작, 지금은 오토바이 비중이 25%, 자동차부품이 75%, 매출액은 4000억 원 정도다. 종업원은 사내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1200여 명이며 주 공장은 창원, 서울은 판매 본부가 있다.

대림자동차는 국내 이륜차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할 때도 있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올해 목표는 44%, 상반기 현재 35%를 달성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이륜차 시장은 갈수록 내수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내수 시장만 40만대에 이를 정도였으나 올해 9만대로 4분의 1로 축소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김 대표는 대림자동차의 재도약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됐다.

"우리나라 이륜차 산업은 자동차 산업에 비해 낙후돼 있습니다. 정부의 이륜차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륜차 산업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토바이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해 가능하면 이용하지 말라는 분위기여서 국내산이 힘을 얻지 못하고 외국산 오토바이에 점점 시장을 내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 오토바이 시장이 자동차 시장과 비슷한 1년에 9000만대 수준인데 그중 5000만대 정도를 일본 메이커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륜차 산업을 키우려고 했다면 경쟁력있는 국산 이륜차 업계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큽니다."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주목하는 시장이 전기 오토바이와 고급화된 오토바이 시장이다. 현재 국내 시장은 외제 고가 오토바이(승용)와 대림의 상용 오토바이로 이분화된 상황이다. 대림오토바이는 내구성이 좋고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아 배달 업무로 쓰이는 상용오토바이 시장에서는 독보적이다. 소비자의 취향이 날로 고급화하는 만큼 좀 더 디자인과 품질에 있어서 한단계 향상된 상품을 내놓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대림이 가야할 방향은 '개인이동수단(퍼스널모빌리티: 도시형 개인 이동수단)'입니다. 21세기의 운송에 있어서 이륜차의 역할은 더욱 강조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부가 동네 약국을 가는데 3000cc 승용차를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전기오토바이와 같은 퍼스널모빌리티가 더 자연스러운 시대가 올 것입니다. 제주도가 추구하는 카본프리아일랜드는 특히 전기이륜차 개념과 딱 맞습니다. 내년부터 판매될 예정인 저희 전기오토바이도 첫 판매 대상지가 제주도가 될 것입니다."

평사원서 전문경영인으로 우뚝

김 대표가 30년간 경제계에서 쌓아온 역량은 대림자동차에서도 발휘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1986년 현대자동차에서 평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에서 동유럽본부 판매 담당, R&D 센터 지원사업부장, 기아자동차 경영전략실장 등 20여 개 직무를 거쳤다. 1998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과정에서 그는 기획팀장으로서 현대기아차의 중장기계획을 수립해 기아차 인수에 큰 역할을 했다. 현대의 기아차 인수는 역대 M&A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현대가에서 경영권 분쟁이 있었을 때 가장 민감한 자리였던 홍보팀장을 수행했던 이력도 있다.

"샐러리맨이 할 수 있는 부서는 다 거친 것 같습니다. 중국에 새 공장도 짓고, 동유럽이 막 개방된 이후에는 시장개척에도 나섰습니다. 기아차 인수 업무가 기억에 남는데 당시 현대차가 지금만큼 자금력이 있지는 않았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인수 가능성을 낮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제출한 기아차 인수에 따른 중장기사업 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현재 현대기아차는 당시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습니다. 홍보팀 근무 시절에는 최강 홍보팀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기사가 나올 지 예상해볼 수 있도록 기자들의 기사 작성 패턴을 분석하기도 했었구요.(웃음)"

김 대표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4형제의 맏이로서 사법고시를 도전하고 싶었지만, 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상황에서 마냥 시험준비를 할 수 없었기에 샐러리맨의 길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법학지식은 경영자로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상법, 노동법 등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논리적 사고,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를 겸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족하다고 느낀 경영학은 MBA(경영전문대학원) 과정을 통해 습득했다. 그 외에도 부족한 것은 다량의 독서를 통해 보충했다.

"기본적으로 1년에 100권을 읽는다는 목표로 항상 책을 가까이 합니다. 저는 연초에 주제를 정해 한 해 동안 몰입해서 읽는데 작년에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책, 그 전 해에는 우주론과 양자 역학, 그리고 올해는 중국의 역사에 대해 심취해있습니다. 중국인의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중국인의 문화, 정서를 알게 되고 중국 시장과 관련해 회사 경영에 있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요."

"제주 후배 경영인에 노하우 전수"

그는 제주도의 문화가 21세기를 헤쳐나가는 큰 자산이 될거라 믿는다. 다만, 글로벌 세계시민으로서의 동참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인만큼 제주도민이 세계 시민으로서 개방성과 포용력 그리고 미래를 향한 공통의 꿈을 펼쳐 간다면 제주는 동북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주출신으로서 독자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온 그는 고향 제주에서 후배 경영인들에게 자신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 조금이나마 공헌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제주도는 굉장히 잠재력이 큽니다. 한 울타리에서 고부간 경제권을 나눠서 살고, 노년에도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하고, 이런 것들은 과거의 지나간 문화가 아니라 21세기를 헤쳐나가는 가장 큰 자산이 될거라고 봅니다. 단순히 자연환경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이러한 제주의 자산을 도내 오피니언 리더들이 잘 발굴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방신 대표이사는]

김 대표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으로 오현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서강대학교에서 MBA를 수료했다. 1986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후 동유럽 본부, 마케팅전략실 마케팅전략팀장, 전략조정실 전략조정팀장, 기아자동차 경영전략실장, 연구개발본부 지원사업부장, 북경현대기차유한공사 부총경리(2007년)직을 수행했다. 한국후지쯔 대표이사 사장(2009년), 효성 중공업부문 기전PU 사장(2010년), 두산 모트롤 BG CEO(2012년)를 거쳐 2015년 대림자동차 대표이사로 취임,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