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가 당신께 "바람을 보았는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답변하기 보다는 흔들리는 나뭇잎을 연상하면서 사계절의 바람세기를 떠올릴 것이다.
인향, '인간의 향기'도 바람과 비슷하여 무색무취하고, 눈으로는 안 보이고,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러나 인향은 자연의 순리에 의해 생성된 바람과는 달리, 자기 인생관의 가치를 걸고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건져올린 고매한 향기이다.
그래서 인향은 가슴과 영성으로 느끼는 감성이고 정서이고 품격이다. 때문에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함을 요구한다.
성철 대선사가 열반하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하자 전국 일원에서 추모의 물결로 출렁거린 것도 어렵고 힘들 때 함께 살아온 성현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도의 물결이었고, 숭고하고 거룩한 영성을 본받고 싶은 마음에 발로인 듯하다. 이외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양한 인향을 발현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하지만 역사에 다 수록되지 않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소리없는 울림도 민들레 홀씨처럼 사방팔방으로 번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큰 몫을 다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일이다. 자비와 자애, 용서와 사랑 등은 결국 수혜받는 자만이 몫이 아니다. 주는자와 받는자가 함께 공유하고 함께 누리는 가치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자비는 고통 받는이의 아픔을 해결해 주고, 자애는 다른 이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고 용서와 사랑은 인간적 체감온도를 같게하고 감싸 안으면서 개과천선의 길로 안내한다.
인향을 본질은 수혜 받는자 보다 건네주는자에게 초점을 모으는 행동이다.
만약, 인향을 베풀고 싶어도 수혜 받을 수 사람이 없다면 모두가 무용지물이 되어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보다 더 큰 충격과 절망감에 빠져 꿈과 희망을 잃고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인향을 품고 사는 사람은 굽은 길과 암흑같은 길을 걸어 갈 때에도 한눈을 팔지 않고 그저 당당하게 나아갈 뿐이다. 그 연유는 굽은 길 다음엔 곧은 길이 있고, 캄캄한 길 다음엔 광명이 비친다는 신념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걸어 가다가도 장애 요인이 발생하면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서 적극적인 경청과 혜안을 가지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며 공감력을 높혀나간다.
인향은 통합적 인성을 겸비한 사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인향인은 남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정성을 다하는 삶을 본보인다. 해야할 일도 먼 곳과 큰 것에서 찾지 아니하고, 가깝고 작은 것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상호 필요성을 중시하는 삶을 열어간다. 인향인은 필요의 씨앗을 뿌리고 정성으로 꽃을 피워내어 창조의 열매로 가꾸어 나간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 닥친다 하더라도 지사에 긍정적인 사고와 화평한 마음으로 올곧게 살아간다. 그래서 잔잔한 감동을 진한 감동으로 전이시켜 추억의 삶을 희망의 삶으로 바꿔 나간다. 아무리 예쁜 꽃도 떨어질 때에는 추하게 지게 마련인데, 인향인의 뒤태는 세월에 비례하여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서 인향인의 삶은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희망으로 좌절을, 웃음으로 슬픔을, 용기로 실패를, 나눔으로 욕심을, 사랑으로는 저주를 이기면서 아름다운 삶을 열어간다.
진정 인향이 넘치는 강물은 없는 것일까, 그런 강물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연다. <부희식 제주수필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