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내 마음의 내비게이션

[하루를 시작하며]내 마음의 내비게이션
  • 입력 : 2016. 07.27(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옆자리에 타면 늘 딴 생각을 한다. 잠깐 스치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길 뿐. 어디쯤인지 궁금하지 않다. 그저 먼 데 꽃을, 잠시 내려 들여다보고 싶다. 그래 놓고는 혼자 어디를 찾아가려면 걱정부터 된다. 예전에는 남편이 내비였다. 길을 물으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쭉쭉 그려나간다. 놀랍다. 하지만 약도는 지도만큼 아주 세세하지는 못해서 나는 주로 작은 샛길에서 먼저 꺾었다. 길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길을 잃게 한다. 혼자 가는 길은 성마른 모험이다. 한번 갔던 것으로는 자신이 없다. 인터넷과 내비가 꼼꼼한 안내자가 되기 전에는 종종 헤매 다녔다. 요즘도 가끔, 얼핏 아는 곳이라고 위치 확인을 잊었다가 순간 당황한다.

예전에 아이와 삼나무 미로에서 길 찾기를 해 본 적이 있다. 재미보다는 약간 두려웠다. 놀이공원의 미로야 어디로 가든 결국 출구를 찾을 텐데도 내 키를 넘는 수벽에 답답함을 느끼고 초조해졌다. 들뜬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의 황망한 발걸음이라니! 길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잠 속에서도 주차한 차를, 낯선 곳을 찾아 헤매는 꿈을 꾼다.

내비는 참 친절하다. 가는 길의 거리와 소요시간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몇 번이라도 잘못된 이동경로를 짚어 재탐색을 거치며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심지어 과속방지턱, 최저가주유소까지. 길을 잘못 들었다고 반복적으로 쉬지 않고 알려줄 때면 웃음이 난다. 어찌나 친절한 언니인지. 그래 알았어… 응, 그래 고마워… 아닌 게 아니라 참 고맙다. 간혹 내가 아는 지름길 말고 전혀 다른 길을 가르쳐 주어서 당혹하게 한다. 지번주소에 비해 도로명 주소는 쉽고 간결하다. 길의 끝과 끝이 있을지언정 그 곳은 그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홀수와 짝수를 구분하고 더하고 빼면서 길이 펼쳐진다.

길 위에서 길을 잃는 것 말고도 곧잘 나는 길을 잃는다. 도착점을 모르기도 하고, 도착점은 알되 어느 갈림길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인다. 앞선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기도 쉬운 것만은 아니다.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은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나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장마가 끝나니 폭염이다. 독서의 계절이다. 뙤약볕 아래가 노동현장인 이들에겐 한가로운 이야기겠지만, 자리 깊숙이 앉아 책읽기 좋은 계절이다. 얼마 전 들른 '조정래-태백산맥문학관'에서 탑이 된 독자들의 필사본들을 보았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을 때, 쉬우면서 가장 기본적인 공부라는 필사. 작가는 필사를 "책을 되새김질 하는 과정이며, 단순히 글자를 쓰는데 끝나지 않고 통독을 하면서 옮겨 쓰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백번을 읽는 것보다 한 번 필사하며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길을 찾으시는가. 삶의 길잡이로 삼고 싶은 경전이나 고전을 정해 천천히 필사를 하면서 그 길을 찾아보는 것도 이 여름을 지혜롭게 나는 방법이 되겠다. 길 위에서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책을 펴고 묵혀둔 다이어리를 열자. 몇 장 쓰다 만 일기 뒤를 날마다 조금씩 채워나가다 보면 선한 영혼이 가리키는, 나의 지향점이 어렴풋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로 갈까, 어지러운 마음 가닥이 잡히지 않을 때 결 고운 시집은 어떤가. 신발 끈 잘 메고 오름을 오르자. 올레를 걷자. 그리고 또박또박 줄과 칸을 채워 보기로 한다. 오는 가을엔, 작지만 탐스러운 열매 하나를 얻지는 않을는지. 거기, 내 마음의 내비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오늘도 필사 한 편. <김문정 시인>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1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