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71주년을 맞아 우리가 흔히 재일동포라고 부르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통찰한 책이 나왔다.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근대사 전문가인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학 교수와 재일 2세 학자인 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교수가 신문과 잡지, 기록물 등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재일조선인의 사회사이다. 역사학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문화연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연구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함께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강제징용 과정과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사건을 일본 정부의 공식 기록이나 1차사료를 통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일제는 강점 이후 직업소개소와 청부업자를 통해 조선인 노동자를 모집한 뒤 남성은 토목건설이나 탄광, 여성은 방직공장이나 염색공장에 고용했다. 저자들은 당시 현상을 최근의 이주노동자의 연쇄 이주와 다를 바 없는 형태였다고 설명한다.
책은 오사카에 재일제주인이 늘어난 과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현해탄을 운항했던 관부연락선에 이어 1923년에는 제주도와 오사카를 잇는 직항로가 개설돼 제주도의 여러 항구에서 배를 타면 갈아타지 않고도 직접 오사카에 갈 수 있게 됐다. 당시 오사카에는 제주도 출신자가 제주도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에 해당하는 3만명이나 살고 있었다. 오사카 거주 재일조선인은 세계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에도 한 사람당 60엔이 넘는 돈을 고향 집에 보냈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를 "바다를 넘는 생활권이 형성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일본 정부나 우파는 물론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까지도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공업화에 대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한다. "일본의 조선 지배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식민지 공업화를 허용한 드문 사례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국 본토의 사회질서 유지와 방위를 위해 취한 정책과도 관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제 공황으로 일본 내 실업문제가 심각해지고, 치안과 교육 문제가 불거지자 조선인 노동자들의 일본 유입을 억제했다는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가 난무할 만큼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 수준은 천박하다. 한국사회 역시 재일조선인에게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민족관이 뿌리 깊다. 그러나 독자들은 책을 읽고 나면 옮긴이의 말처럼 재일조선인에게서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를 열어 갈 주역이 될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한승동 옮김. 삼천리.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