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 (103) 제주시 아라동 월평마을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 (103) 제주시 아라동 월평마을
달이 떠오르는 '다라쿳'… 참살이마을 공동체를 향해
  • 입력 : 2016. 09.27(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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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남쪽 동산밭 지경에서 바라본 '다라쿳' 월평마을 전경(위)과 시내버스 종점이 된 마을회관 앞(아래).

4·3이전까지 드넓은 목장지대 고수목마 풍경 그대로
도심 인접한 농경지서 나오는 농산물 활용 사업 구상
땔감·숯 등 굽기 위해 다녔던 옛길 되살리기도 꿈꿔



다라쿳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섬 제주의 고유 지명중에서도 이색적이다. '달 아래 마을' '달이 떠오르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들래오름이 주거지역에서 가장 가깝다. 한문으로 月下岳, 月來岳. '다라'를 달(月)로 생각하여 표기하면서 마을 이름이 月坪里가 되었다. 달의 의미까지 옮아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롭다. 탐라순력도에는 마을 명칭이 別羅花라고 표기되어 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을지에 나타난 해석에 따르면 '다라곶'은 한자를 차용하여 나타낸 것이다. 別은 '다르다'의 앞 글자의 뜻에서 온 음이고, 羅는 발음 그대로 '라'이고, 곶은 발음이 꽃과 유사하여 그 뜻에서 가져와 花를 썼다. 다라 +ㅅ(사잇소리) +곶 = 다라콧, 다라쿳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음이 된 것이라고 한다. 주목할 것은 '다라'는 높다는 뜻을 가진 고구려어 '達'과 연관지어 '높은 곳에 있는 숲과 덤불지대'라는 뜻이 된다. 고유 지명에 고구려라는 북방계 언어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것은 탐라국시대부터 위치정보가 필요했던 지역이라는 의미가 된다. 마을 이름이 이토록 오래된 곳은 흔치 않을 것이다.

제주고등학교 서쪽 화북천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시작된다.

한라산 북쪽 중산간 지대에 이렇게 포근한 느낌을 주는 지세가 있어 경이롭다. 동쪽으로 가무니모루 능선을 넘으면 강각씨내(無頭川)까지는 평탄하고, 남쪽으로 던덩모루를 넘으면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목장지대까지 이어진다. 한라산 방면으로 올라가면서 쌀손장오리와 돌오름까지다. 서쪽은 당동산, 북쪽은 병이동산과 중이동산이 높고 낮은 능선을 형성하면서 중심 지점에 분지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김양언(77) 노인회장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이렇다. "약 400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429년(세종11년) 제주도 중산간 목야지대를 한라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구분하여 10개의 소장으로 크게 구분하여 국영목장을 만들 당시에 이 지역은 3소장에 속해 있었습니다.

넝쿨에 가려진 4·3성담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해발 300m에서 500m에 이르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는 초지는 마소를 키우기에 적합한 여건이지요. 4·3 이전까지 모습은 마을 남쪽 동산 지대를 올라가면 나무 한 그루 없는 목장지대였습니다. 화입을 해서 잡목들을 매해 태워버렸으니까요. 어린시절 기억으로 말들이 뛰놀던 그 너른 초원의 모습이 천고마비의 계절에 고수목마(古藪牧馬) 풍경 그대로였습니다. 소개령으로 마을 전체가 불타고 주민들이 해안 가까운 마을로 내려가 고생하며 살다가 올라와서 집들을 재건하려고 해도 나무를 구하려면 4㎞정도 올라가서 겨우 작은 나무를 잘라 두 팔로 끌고 와야 했습니다. 해방 이전까지만 해도 100마리 이상 마소를 보유한 집이 있었고 대부분 수십 마리는 키웠습니다. 70년대 초반까지 주민의 90%가 축산에 종사했던 부촌이었습니다." 다라쿳은 전통적으로 목축을 중심으로 밭농사와 함께 번창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상명 마을회장

강상명(56) 마을회장이 생각하는 당면과제와 숙원사업은 이렇다. "제주시가 팽창하면서 전통적으로 함께 이웃사촌으로 살아온 마을에도 외부 유입 인구가 대폭 늘어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라쿳 마을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하나의 책임감이 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들래오름을 비롯하여 지대가 높은 동산이나 모루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한라산에서부터 멀리 바닷가 마을까지 시원하고 장엄하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경관을 가지고 자연을 향유 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미 도농복합지역 성격이 강하고, 여러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정작 조상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의 자녀가 성장하여 분가를 했을 경우 물려준 땅에 집을 지으려 해도 하수 장치가 없으면 집을 짓지 못합니다. 그 비용에 엄두를 내지 못해 고향을 떠나 도시지역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도시화된 지역에 인접한 특수한 위기감 속에서 발생하는 심정이 녹아 있다. 고향이라는 애정이 그 지역을 가꾸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차별화된 정책이 요구되는 것. 김덕홍(57) 아라동장은 "월평동의 경쟁력은 보존의지가 큰 자연친화적 주민의식에서 나옵니다. 조망 경관이 뛰어난 여건과 도시지역과 인접한 농경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가지고 참살이마을 성격의 마을공동체 사업을 펼친다면 각광받는 마을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아라동 여러 지역 중에 가장 자연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지역적 강점을 살려야 한다는 판단이다. 들어올 예정인 제2 첨단과학단지나 아파트 등이 있지만 마을 주민들이 역량을 발휘하여 전원마을 이미지를 지키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연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면 농외 소득 또한 증가하리라는 정책적 기대감이 깔려 있다.

선조들의 힘자랑 용도로 쓰였던 뜸돌이 다른 마을에 비해 크다.

주거지역에 국한하여 바라보면 다라쿳이 지닌 장점은 도시지역과의 접근성 정도지만 한라산 방향으로 해발 1300m 돌오름 지역까지 영역이 길게 형성되어 있는 위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불칸디오름과 쌀쏜장오리지역까지 조상들이 땔감이나 숯을 굽고자 다녔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분명 조상들이 다녔던 길이 있었을 터. 한라산 국립공원 지역으로 차단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덤불과 숲으로 막혀 있는 곳이 많지만 그 길을 찾아 올라가면서 다라쿳마을 조상들의 얼을 되짚어 보고자 하는 계획이 마련되어 있었다. 강상명 노인회장을 중심으로 마을 어르신들이 어린시절에 다녔던 길을 더듬어 청년회원들에게 설명해주면서 함께 오르는 일이야말로 흐뭇한 바톤패스 행사가 될 것이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며 조상들의 삶의 흔적과 자세를 자부심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마을'이라는 공동체 시스템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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