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시작하며]날이라도 조아베시민

[하루를시작하며]날이라도 조아베시민
  • 입력 : 2016. 11.30(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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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형,

노래방 점수를 믿습니까? 정치인들 말씀을 믿습니까?

요즘 이 나라에 정치가 보입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보입니까? 상하좌우 동서남북 그 어디에라도 좀 보입니까? 약에 쓸 만큼이라도 보입니까?

정은의 핵폭탄이 언제 날아와 머리에 박힐지 모르는 이 엄중한 판국에 0형, 허구헌날 우리 것들 하는 짓거리를 보고 계십니까? 귤 따다 말고, 고기 잡다 말고, 장사하다 말고, 막노동 하다말고 지치고 서럽고 고달픈 우리 서민들이 정작 그 정치인들을 걱정하는 풍경, 두루 보고 계십니까? 입버릇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를 외치던 사람들 지금 그 가슴에 국가가 있을까요? 양기가 온통 입으로만 오른 사람들 지금 그 가슴에 과연 국민이 있을까요?

엎어지든 갈라지든, 국가와 국민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어찌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또 어찌하면 자기 패거리에 이익이 될 건가에 혈안이 된, 오로지 그런 데 잔머릴 굴리고 굴리는 사람들 아닌가요, 그들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정치가 이 지경까지 이릅니까?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가 이보다 더 어지러울까요? 휩쓸려 다니는 그들의 행태가 시정잡배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일순이면, 정은의 핵폭탄이 날아와 머리에 꽂힐지 모르는, 이 아찔한 시점에 이르러서도 0형, 우리 것들 이토록 싸움질로 날밤을 지새워도 괜찮을런지요? 안개, 안개입니다, 사방팔방 한치 앞도 가늠 못 할 겹겹이 물안개입니다.

0형, 감귤 수확철인 요즘은, 새벽 다섯 시면 농장 갈 채비를 합니다. 일꾼들 태우고 농장에 도착하면, 그래도 사위는 컴컴하지요. 모닥불 피워놓고 모여앉아 커피도 한잔하면서 왁자지껄 말들을 합니다. "대체 뭔 일이여?" 선잠 깬 산노루가 뭐라고 뭐라고 씨부렁거리기도 하는 들녘의 새벽은 싸늘합니다. 이윽고 귤이 보이면 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올해는, 풍작이라는 매스컴과는 달리 수확량이 예상치에 훨씬 못 미칠 듯합니다. 그러기에 가격이라도 잘 형성되어, 이날을 위하여 일 년 내내 고생한 농가들이 한번 웃어볼 날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쩐 일인지, 감귤 수확 철엔 꼭 비가 많이 옵니다. 노래 중치 맥히듯, 하루 일하면 하루 못하고 또 하루 일하면 이틀 못하여, 농가들을 애태우곤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지만, 차일피일 마루다 보면, 부피과가 생겨나 상품성을 잃게 되지요. 기어이 눈 내리고 연말을 넘기게 되면, 방정식은 아주 복잡해집니다. 동해(凍害)로 애써 지은 농사를 망쳐버리는 것은 물론, 나무의 진을 다 뺏겨 이듬해 100% 해거리현상이 일어나게 되어요. 또 지난해처럼 추위가 심할 때는 아예 그 나무들이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한 가지, 서둘러 수확하는 것 외엔 달리 길이 없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 번 경험한 일이기에 벌써 걱정되고, 다들 서둘다 보니 극심한 인력난이 오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 80이 넘은 할머니들까지 귤 따러 나오는 실정입니다. 이럴 땐 공공근로 등도 잠시 멈췄으면 합니다. 길가에 모여 앉아 아직 손에 잡히지도 않는 풀을 또각또각하며 시간을 때우는 그들에게, 귤을 딸 수 있게 할 수는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지요. 어떻든 날씨라도 좋아서, 올해의 귤 수확이 순조롭게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0형, 멀리 바다가 보이네요. 금세라도 만선 뱃고동이 울려 퍼질듯한 한낮의 고요입니다. 여름내 숨죽였던 시선암(詩禪庵)의 수선들이 함성처럼 일제히 그 진초록을 내뿜고 있습니다. 귤 수확이 끝나고, 함박눈 너울 너울에 꽃피울 그 수선들을 볼 것입니다, 0형.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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