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촛불의 뜻 '송박영신'

[한라칼럼]촛불의 뜻 '송박영신'
  • 입력 : 2016. 12.27(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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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청와대 놀이는 이제 멈추게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반드시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리라 믿는다. 헌재 재판관들이 위대하고 준엄한 촛불민심을 결코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제주시청 촛불집회에 몇 번 나가면서 울컥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번엔 뭔가 다르구나, 확실히 끝장내겠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내 아들딸보다도 어린 중고생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뒤바뀌는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른바 86세대지만, 1987년 6월항쟁 때 현장에 있지 못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직후 논산훈련소로 들어갔고, TV도 제대로 못 보는 이등병으로서 6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격변의 역사 속에서 나는 그때, 어떻게 하면 구타를 덜 당하고 얼차려를 덜 받을까, 그런 동물적 고민밖에 못하는 신세였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이번 촛불혁명의 성과는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이 촛불의 뜻이다.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로서 일본군 장교를 지냈던 인물이다. 그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국군 장교가 되더니, 급기야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았다. 18년 독재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했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하지만,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며 오늘날 한국경제의 위험인자인 재벌을 키워낸 게 그였다.

박정희가 총탄에 쓰러지면서 모두가 봄날을 기대했다. 그런데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정권을 잡았다. 폭압 속에서 저항은 다시 이어졌고 마침내 19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그러나 야권분열로 노태우가 집권하면서 군사정권이 이어졌고, 기존세력과 야합한 김영삼이 문민정부를 내세우며 대통령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 정권은 박정희와의 단절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박정희에 대한 친연성이 자신들의 안위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양상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정희를 미화한 이인화의 '인간의 길'과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 꽤나 팔리더니 서울대생들이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로 박정희를 꼽기도 했다. 이인제는 박정희를 닮은 분장을 하고서 대선에 출마해 적잖이 인기몰이 했다.

그 무렵 박근혜가 정치 일선에 등장했다. 1997년 이회창의 대선 지원 유세를 벌이더니 1998년 4월에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이후 유력 정치인으로서 주목받던 그는 마침내 댓글부대를 동원한 지난 대선에서 청와대 재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국정이 아니라 청와대살이만 즐겼다. 그러면서도 유신의 추억을 되살리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촛불혁명은 박정희 세력과 단절함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앞으로 친일·친독재 세력은 절대로 발호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총화단결'이라는 전체주의적 구호, '잘 살아 보세'로 위장한 성장만능주의, '하면 된다'는 상명하복식 희망고문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을 넘어서서/ 덜 벌어서 덜 쓰고 나눠 쓰는 삶을 기쁘게 받아들여/ 더 푸르고 건강한 몸 생활과 더 많은 사랑과 친절과/ 더 아름답고 기품 있는 문화생활과/ 소박하지만 더 알찬 행복감으로/ 노동의 보람을 누리며"(박노해 '꿈을 모두 함께 나눈다면') 살아가는, 그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세밑이다. 송박영신(送朴迎新)!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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