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허깨비 춤

[하루를 시작하며]허깨비 춤
  • 입력 : 2017. 03.08(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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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양심이 있는지, 올겨울은 포근했다. 작년 겨울, 그 유례 없던 한파로 많은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수확 중인 감귤들이 동해(凍害)로 하루아침에 파치가 돼버릴 때, 기대에 부풀던 농가의 가슴이 어떠하였겠는가.

애지중지 그 20~30년생 귤나무들까지 얼어 죽을 때, 차마 그 가슴이 어떠하였겠는가.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으로 어디에 하소연인들 할 수 있었으랴. 이런저런 사유로 올 귤 농사는 흉작이었지만 판매가격은 좋은 편이었다. 아니 흉작이라야 비로소 제값을 받는 악순환인 것이다. 포근한 겨울 날씨로 농가들은 서둘러 농장으로 차를 몬다. 훌훌 털고, 새 일 년의 준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나라가 이토록 어지럽고 민심이 뒤숭숭하다. 무엇이 어쩌고저쩌고, 누가 또 어쩌고저쩌고 말들이 많고 많다. 밑도 끝도 없는 그 말들의 소용돌이에서, 영양가 하나 없는 그 말들의 어지럼증에서 우리는 어서 헤어나야한다.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사람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를 죽 먹듯 하는 사람들, 그러고도 그런 사람들 뭐가 그리 당당한지, 그러고도 그런 사람들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뻔뻔도 정말 그 철면피들의 정치놀음에 우리가 휩쓸리면 안 된다. 그들의 그 허깨비 춤에 불나비처럼 우리가 휩싸여선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농부들이 할 일은, 촛불을 드는 일이 아니다, 태극기를 드는 일이 아니다. 황소처럼 뚜벅뚜벅 들녘으로 갈 일이다. 삽을 들고 곡괭이를 들고 전정가위를 들일이다. 늘 서러운 이 허기의 들녘을 가꾸고 또 북돋을 일인 것이다. 숭어 튀면 복쟁이도 튀듯 다덜 나상 추어불민, 더더구나 나라꼴이 어찌 되겠는가. 우리는 묵묵히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이니, 해동(解冬)의 들녘으로 우리는 가자.

0형, 요즘 들어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씀이 더욱 절실히 느껴집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이번 공일날은 바띠 걸라" 미리부터 명령을 내립니다. 그날이 가까워지면 속으로 "비 와베시민…" 하곤 했습니다. 그땐, 바쁘고 지친 어머니 마음을 아예 헤아리지 못했지요. 결국 비가 안 와서 밭에 가면, 일하는 시간보다 시계 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 해 언제민 지코" 해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나이 70이 다된 지금, 날마다 인부들을 싣고 농장에 갑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지치고 지칠 때는 "비라도 와베시민…" 해지는 것입니다. 산천이 몇 번씩 변하는 동안에, 한 발짝도 빗나가지 않는 그 말씀의 보폭은 경악입니다, 전율입니다.

0형, 아직까지 아들놈에게 농장에 나오라 마라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토요일 일요일이면 으레 그는 농장에 나옵니다. 벗어부쳐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쟤도 비 오기를 바라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아요. 내가 직장에 다닐 때, 그때도 저만큼 열심히 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0형, 다음은 조운(曺雲) 선생님의 시조입니다. 그토록 가슴 뛰게 하던, 젊은 피를 끓게 하던 바로 그 '구룡폭포'입니다.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 진주담과 만폭동 다 그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에 한번 굴러 보느냐'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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