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시작하며]결기
  • 입력 : 2017. 03.15(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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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하다. 신제주 바오젠 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도내 주요 관광지마다 큰 소리로 들려오던 중국어 특유의 억양들을 이젠 들어보기 어렵다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이후 중국이 가해오는 경제보복 때문이다.

경제보복의 불똥을 가장 확실하게 맞은 것이 제주도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이 중국인이었으니 중국인들이 발길을 끊는 순간 그들을 주고객으로 삼던 숙박업소, 식당, 여행사, 전세버스, 심지어는 항공사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계속될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데 상황의 심각성이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경제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유행하던 말이 있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우리나라엔 태풍이 분다고. 그만큼 막강하던 미국의 영향력을 두고 한 말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중진국이라 하지만 미국의 재채기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재채기에 큰 홍역을 치르곤 한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리만 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몇 년 간 휘청거린 것이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에게 미국은 시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시어머니의 심기를 잘 살펴야 가정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는가.

최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하여 새로운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처음엔 기회였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중국과의 무역규모가 종전 최대 교역국이었던 미국을 추월해버렸다. 추월해도 너무 추월해 버렸다. 우리나라 총수출액의 25% 정도가 대중 수출이라 한다. 이처럼 경제가 어느 특정국가에 쏠려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도 우리 경제의 의존도가 높았지만 두 나라는 냉전이라는 세계정세 속에서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었기에 큰 갈등 없이 무난히 넘어가지 않았나 싶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중국은 여러모로 이질적인 나라다. 공산 일당 독재국가일 뿐 아니라 북한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더 문제가 꼬이고 있다. 미국이란 시어머니와 중국이란 시어머니를 동시에 섬겨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 참으로 딱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뾰족한 해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을 달래자니 미국이 섭섭해 할 테고, 미국을 따르자니 중국의 압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얄팍하게 잔머리를 굴려 빠져나갈 계제도 아닌 듯하다. 나름대로 한 번 뚝심을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까. 두 분 시어머님들, 두 분들의 입장도 있지만 며느리의 입장이란 것도 있는 겁니다.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그 원칙에 입각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선 이상은 절대 양보를 못합니다. 이런 결기를 보여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스위스를 침공하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 전 유럽을 손아귀에 넣은 나치인데 한 움큼도 안되는 스위스가 제대로 보였겠는가. 하지만 스위스는 굴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물론 최종적으로는 스위스를 점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린 이탈리아로 통하는 알프스 터널을 폭파하고 결사적으로 유격전을 벌일 것이오. 이탈리아 방면으로의 보급을 염려하던 나치는 결국 스위스 점령 계획을 접었다고 한다. 이른바 대국이라 하여 무리한 압박만을 능사로 삼는 나라에 대해서는 때론 단호한 결기를 보여 주는 것도 작은 나라의 생존전략이 아닐까.

<권재효 지속가능환경센터 사무처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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