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지금, 우리 정말로 살아있는 건가요?

[책세상]지금, 우리 정말로 살아있는 건가요?
조해진 세 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
  • 입력 : 2017. 03.17(금) 00:00
  • 손정경 기자 jungkson@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생의 절망·고독에 대한 9色의 기억

낯설지 않다. 작가 조해진이 수많은 문장으로 풀어낸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에 쉽게 스며들 수 있는 이유다.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 직업적 실패 등 퍽 현실적인 결핍들에 직면한 인물들의 순간순간을 담담하지만 섬세하게 읊조린다. 마치 독자들에게 기억 언저리 어딘가 접어놓았던 비슷한 삶의 순간, 당시의 감정을 잠시 꺼내보아도 된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녀의 차분한 문장과 마주하자 닫아놓았던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마저 든다.

2013년 신동엽문학상, 2014년 젊은작가상, 2016년 이효석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 작가 조해진이 세 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를 출간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한 작품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는 '소외와 불안의 문제를 개인의 삶을 통해 포착해 이 시대에 호응할 수 있는 문학적 상상력이 무엇인지를 환기한 작품'이란 호평을 받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산책자의 행복'을 비롯한 9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어머니의 죽음을 상상하면 눈발이 날리는 텅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는 듯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왔지만 상상 속 외로움은 현실의 피곤을 이기지 못했다. 피곤은 줄지도 않았다." ('산책자의 행복' 중)

철학과 강사였지만 직장을 잃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홍미영이란 인물이 툭 뱉어낸 문장들은 '살아 있음'에 대해 고민해보게 한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당장 내일을 고민해야 하는 궁핍한 생활 앞에서는 사치처럼만 느껴진다. 삶이 그리 팍팍할 진데도 개에 쫓겨 혼쭐이 난 후 그녀는 "미치도록 살고 싶다"고 흐느낀다. '빈곤층 알바생'일 뿐인 지금의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정말 '살고 싶다'는 진심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고 아픈 청춘을 지칭하는 'N포세대'까지 양산한 현 시국에 과연 이는 그녀 혼자만의 한탄인 걸까? 어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이 시대 다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을까.

또한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역사적 폭력이 한 개인의 삶에 아로새긴 상처에도 주목해 눈길을 끌었다. 다사다난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나는 지금, 퍽 시의적절한 주목인 듯하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이렇게 전한다. "나와 나의 세계를 넘어선 인물들, 그들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소통했고 유대를 맺었다. 그들은 나보다 큰 사람들이었고 더 인간적이었다. 이제야 나는, 진짜 타인에 대해 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독자들이 그 인물들과 소통해 볼 시간이 왔다. 창비. 1만2000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598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