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6)]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16)애기똥풀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6)]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16)애기똥풀
애기똥풀, 몽골 현지답사서 확인… 국내외 문헌기록엔 없어
  • 입력 : 2017. 05.29(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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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코그노칸 산.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애기똥풀, 러시아·유럽·일본·중국 등 분포
전국서 발견되지만 유독 제주에선 드물어


모래언덕에서 코그노칸산으로 가기 위해서 차에 올랐다. 모래밭은 그다지 강한 햇살이 아니었음에도 반짝이는 반사광으로 얼굴이 따가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래가 날렸고 사진을 찍는데도 방해가 되었다. 초원길을 어느 정도 달렸을까 멀리 웅장한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활한 초원에 우뚝한 산은 주로 바위로 되어 있어서 회백색으로 보였다. 산으로 접근하는 길은 거의 완전한 평원이어서 마치 일렁이는 바다 위를 달리는 배를 탄 것 같았다. 코그노칸산은 바다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면서 여간해서 가까워지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첫발을 내디뎠을 때 우리는 이제 섬에 다다랐음을 느꼈다. 흙을 밟으니 편안했다. 산에 자라는 식물들은 모래땅에 자라는 종들과 확연히 달랐다. 나무들도 훨씬 컸고, 바위들 사이사이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었다. 모래땅에서 봤던 종들보다 훨씬 싱싱해 보인다.

'야, 꽃 잘 피었네' 몽골학자가 반가운 목소리로 잡아끈다. 바위그늘엔 좀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식물이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애기똥풀 같은데…'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멀고 환경도 다른 중앙아시아에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애기똥풀이 자랄 것 같지 않아서 자신이 없었다. 역시 애기똥풀이었다. 현지탐사가 얼마나 많은 걸 알 수 있게 해주는지 느끼는 순간이다.

애기똥풀(Chelidonium majus)

코그노칸산의 인가목(Rosa acicularis)

한라산 구상나무숲에 자라는 생열귀나무(Rosa davurica)

애기똥풀은 높이 80㎝까지 자라는 2년초다. 꽃과 뿌리가 황색이다. 줄기를 자르면 애기 똥같은 황색 진이 나온다. 몽골에선 사실 매우 드물다. 식물상이 풍부한 보호지역 외에서는 볼 수 없다. 몽골에서는 주로 북몽골에 분포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보다 남쪽으로 가면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베리아잎갈나무숲, 자작나무숲, 물가의 그늘진 곳, 그늘진 암석지에 자란다.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러시아, 유럽, 일본, 중국에도 분포한다. 우리는 이번 탐사를 통해 이 종이 몽골에도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지만 국내외의 여러 문헌에는 이런 내용이 빠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을근처의 양지 또는 숲 가장자리에서 흔히 자란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드물다. 목장의 축사 주변에서나 간혹 볼 수 있을 뿐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다. 자생하는 식물인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다. 제주도를 둘러싼 인근지역에 모두 흔한 종인데 왜 제주도에만은 드물까.

빽빽한 바위그늘을 벗어나 훤히 트인 곳으로 나왔다. 이곳은 어느 정도 고지인데다 보호지역이어서 그런지 가축들에 의한 피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식생의 높이가 거의 1m에 달했다. 마치 장미처럼 선홍색의 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가목(Rosa acicularis)이다.

장미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도 분포한다. 러시아의 아무르, 캄차카, 사할린, 우수리, 일본,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도 분포한다. 널리 정원에 재배하고 있다. 몽골사람들은 이 식물의 열매, 꽃, 잎을 먹기도 하고, 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 속 식물지'는 전국에 분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제주도에는 분포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에 한라산 고지대 구상나무숲 속에서 이와 계통학적으로 아주 가까운 생열귀나무가 발견됐다. 이 두 종은 외관상 아주 유사하지만 인가목은 어린 싹에 곧은 가시가 많은데 비해서 생열귀나무는 낫처럼 꼬부라진 가시가 있는 점이 다르다. 또 인가목은 잎자루에 가시가 없는데 비해 생열귀나무는 가시가 있다. 불과 수 개체만이 자라고 있다. 몽골에도 분포하는 식물이다.

그 외로도 러시아의 아무르, 캄차카, 사할린, 시베리아, 일본 중국에도 분포한다. 당시까지 국내에서는 남한에서는 지리산이 유일한 자생지였으며, 그 외로는 북한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한라산 장미는 어디서 왔을까?

멸종한 북극 주변 10배체 조상설
유전자 교환 통해 장미로 진화


장미속 식물은 전 세계에 약 200종이 알려져 있다. 그 중 95종이 중국에 분포하는데 65종이 고유종이다. 모두가 아열대에서 아주 추운 한대지방까지 분포한다. 몽골에는 9종, 일본열도에는 18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8종이 분포하는데 그 중 제주도에는 용가시나무, 돌가시나무, 찔레나무, 생열귀나무 등 4종이 있다. 이 중에 용가시나무와 생열귀나무는 대체로 북방에 분포하고 돌가시나무와 찔레나무는 남쪽으로 더 넓게 분포하는 종이다.

그러므로 장미속 식물만을 두고 보면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발생하여 널리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가 지리적으로 북방식물이 자라기엔 상당히 남쪽에 위치해 있는 점으로 볼 때 북방기원이라고 생각되는 용가시나무와 생열귀나무는 빙하기 이전부터 제주도에 널리 분포하고 있었다가 아직까지 살아남은 유존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돌가시나무와 찔레나무는 점차 따뜻해지면서 남쪽으로부터 확산해 들어왔을 것이다.

장미속의 종들은 지리적으로 북쪽에 치우쳐 있고, 고산지역이 많으며, 사막도 넓게 형성되어 있는 중국에 전 세계 종의 거의 반이 있고 고유 종도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그 중 일부의 종들, 예를 들면 인가목과 생열귀나무 등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고위도에 전반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런 분포상황으로 볼 때 중국의 북부와 중앙아시아 등 한랭한 지역에서 발생하여 점차 퍼져나가 북방과 남방에 적응하는 종들이 분화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학자들은 장미가 지금은 멸종한 북극주변에 분포했던 10배체인 종에서 분화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을 '멸종 주극 10배체 조상설'이라고 한다. 장미속에서 가장 단순하면서 원시적 형질을 갖는 종들은 다배체면서 주극 고산지역에 분포한다. 그 중에서도 특징적인 종이 북극주변에 분포하는 인가목이다. 이 종은 6배체와 8배체 계통이 있다. 6배체는 8배체보다 훨씬 남쪽으로 확장해 있다. 또 다른 종 로사 핌피넬리폴리아(R. pimpinellifolia)는 유라시아의 산악에서 가장 널리 퍼진 종이면서 4배체다. 이 두 종은 봄에 가장 먼저 개화하는 종이다. 이 종들은 가장 고위도의 한대림에까지 분포영역을 확장한 다배체 계통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종간에 교잡에 의한 유전자교환이 일어났고 그런 과정이 여러 종간 그리고 세대 간 이루어지면서 많은 장미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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