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한채 같은 삶에 주목
"아, 살았구나"라며 눈물 짓는
섬의 쓰디쓴 사연 고스란히
시인은 몇 해전 '몸에 걸친 옷' 같은 직장을 내려놓았다. "요즘도 시인 있어요?" "시인은 뭘로 돈벌어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는 이 사회에서 철밥통 같은 일을 그만뒀다. 시는 내려놓을 수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데가 많고 가려야 할 데가 많은 시이지만 시는 그를 물밖으로 꺼내 숨을 쉬게 해주는 아이들의 목소리 같은 거다.
'물구덕 지듯 칠성판 지엉 먼물질 나강/ 귀상어에 쫓기고 샛바닥이 퍼렁허게 시려/ 꼭 줄어질 것만 같을 때// 아이고 내 새끼덜, 저 큰놈 족은놈/ 갯것이서 '어멍, 어멍' 부르는 소리 들리면/ 아, 살았구나/ 저것들이 날 살리는구나/ 내 울타리구나//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이'('울타리'중에서)
신작 시집 '물에서 온 편지'를 낸 제주 김수열 시인. 한 사람의 지난한 생이 그 자체로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인은 섬 제주에서 삶이라는 파고를 힘겹게 넘어온 이들이 혼자소리인 양 풀어내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제주방언으로 그들의 구술을 고스란히 적어놓은 듯한 시는 해학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다.
'…몰라……모르커라………모른덴허난……………정말 모르쿠다게…………………모르는 걸 어떵헙니까…………………정말 모르쿠다게……………모른덴허나…………모르커라………몰라……// 모르긴 무사 몰라? 다 알멍도 경 고른 거주, 죄 어신 사름덜 살려보젠/ 그로부터 동네 사름덜이 몰라 구장 몰라 구장, 경 불렀주, 별칭으로/참 고마운 어른이라났주, 몰라 구장/ 알아 구장이라시믄 우리 동넨 끝장날 뻔'('몰라 구장'중에서)
무자년이란 말로 상징되는 제주4·3이 제주 사람들에게 드리운 상처는 시집 곳곳에 얼굴을 내민다. 직접적으로 4·3을 말하지 않더라도 소섬 할머니가 바닷물이 짜지 않고 쓰다 할 때도, 김남주 시인 생가에서 만난 해남농민회장이 '참말로 어째 쓰까이, 저 강정!'이라고 할 때도 녹록지 않은 섬의 운명을 헤쳐가야 하는 제주 사람들의 오늘이 읽힌다. 지난 수년간 이 나라도 제주 사람들을 외면해왔다. 이런 현실을 위로하듯 시인은 4·3당시 수장당한 희생자의 음성으로 우리에게 편지를 띄운다.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놈들 손에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섯 구비 훌쩍 넘었구나//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무 염려 말거라'('물에서 온 편지'중에서). 삶창. 9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