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폭! 아무리 팩트라도 해도 상처는 남는다. 때론 우회적 화법이 정공법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감추고 싶은 우리의 아픈 역사 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 전쟁의 참혹한 잔상들. 어쩌면 떠올리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상처들이다. 이런 아픔들을 생생하게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짝 돌려서 떠올리게끔 만드는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아이 캔 스피크=접근 방식이 다르다. 지금까지 나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영화들이 역사적 아픔을 정공법으로 돌파했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휴먼 코미디라는 훈훈하고 편안한 장르 가운데 진심이 천천히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든 영화이다. 영화 전반부는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긴 채 살아온 민원왕 도깨비 할머니 나옥분(나문희)과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이 두 반대되는 캐릭터가 티격태격하며 보여주는 유쾌함에 젖어 든다. 어렵사리 영어 과외를 받으며 나름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버린 할머니와 손자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속내에 있는 것들을 풀어놓게 되는데…. 이 할머니와 손자 같은 캐릭터 안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정과 감동적인 스토리가 영화 후반부를 탄탄하게 받치고 있다. 전형적이고 투박한 듯 싶지만,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진심에서 묻어나오는 이야기들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75: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 당선작으로 탄탄한 시나리오와 나문희, 이제훈 등의 연기력이 더해져 더욱 영화가 빛을 발한다. 119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어 퍼펙트 데이'.
▶어 퍼펙트 데이=보스니아 내전 종결 후, '잡부' 전문 구호 요원들의 짧은 여정을 담은 스페인 영화다. 전쟁 후유증이 남은 한 마을에 마을의 유일한 식수 공급원인 우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구호 요원들이 파견된다. 전쟁의 참혹한 잔상을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휴머니즘에 빠진 베테랑 요원 맘부르(베니치오 델 토로)와 B(팀 로빈스), 시체를 처음 접한 열정 넘치는 새내기 소피(멜라니 티에리), 전쟁의 상흔을 대표하는 소년 니콜라(엘다 레지도빅), 어이없이 원칙을 내세우는 중앙 관료 카티야(올가 쿠릴렌코) 등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더 깊이 있게 그려낸 로드무비 형식의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이들의 꼬이고 꼬이는 하루를 통해 전쟁이 할퀴고 간 흔적을 담백하게 전하면서도 원칙을 내세운 무능한 관료와 이기적 이익 집단 사이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통해 포장되지 않은 인류애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소 어둡고 묵직한 소재들을 유머와 저속한 성적 농담도 마다하지 않고 기분 좋게 에두르는 위트 있는 장면들을 통해 무게감을 덜어주면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팀 로빈스 등 캐릭터와 대사가 잘 어우러지는 배우들의 명연기와 함께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배경음악도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106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