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형, 이제 수확의 계절입니다. 여름내, 그 무더위며 가뭄이며 때론 연일 폭우에 부대끼면서도, 무사히 예까지를 왔습니다. 극조생 감귤 수확을 다 끝내고, 일반조생의 마지막 소독을 서두르는 요즈음입니다.
0형, 당신은 늘 "일만 하다 죽을 거냐?"고 말하지만, 비 오면 쉬잖아요, 눈 오면 또 쉬잖아요. 그런 날은, 새섬으로 갑니다. 새섬은, 한국시조시인협회상을 수상한 졸시 /신묘년 새 아침을 서귀포가 길을 낸다/ 적설량 첫 발자국 새연교 넘어갈 때/ 함박눈 바다 한 가운데 태왁 하나 떠 있었네/로 시작되는 '함박눈 태왁'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더 각별하지요. 문섬과 서귀포항을 끼고, 심호흡을 하면서 섬을 한 바퀴 빙 돌아 나옵니다.
다음은 삼매봉이지요. 버스정류소 옆 가파른 나무계단을 걸어 팔각정에 올라서면, 한라산 전경이 늠름합니다. 그 너른 품에 포근히 안긴 서귀포 시가지, 월드컵경기장과 혁신도시, 확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검푸른 그 바다에는, 범섬 문섬 섶섬이 통통배 몇 띄워놓고, 그리움처럼 먼 기다림처럼 저마다 간절합니다. 남극의 노인성(老人星)도 볼 수 있는 이곳의 이 황홀경 앞에선 누구라도 아! 탄성이 절로 나오지요. 하산의 발걸음은 외돌개를 향합니다. 그 외돌개를 경유하는 긴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아름드리나무들의 솔바람 속, 넘실대는 바다와 범섬과 갈매기 두엇도 더불어 걷습니다. 매번, 세상에 이만한 곳이 그리 흔할까 싶은 생각이 들곤 하지요.
어느 날 밤, 이효리라는 가수가 TV에 나와 "결혼해보니, 그놈이 그놈이더라"고 심상케 말하는 걸 보았어요. 혼전에, 얼마나 많은 남자를 섭렵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말이 좀 과하다 싶었지요. 그 남편이 "결혼해보니, 그년이 그년이더라"고 했을 경우 마음이 어쩌겠어요.
말이 이상케 흘렀지만 0형, 당신이 늘 자랑하듯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보니, 어떠하던가요? 이 서귀포만한 데가 더러 있습디까? 가보니, 그놈이 그놈이던가요? 물론 여행이야 좋겠지요, 여건만 허락한다면.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늘 서귀포입니다. 고향 서귀포, 그분에 넘치는 행운에 감사하며, 비록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이지만, 감지덕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정은의 핵폭탄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위태한 시기에 살고 있다. 이 지엄한 판국에, 어느 똑똑한 인간들은, 북핵을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핵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전술핵 재배치도 안 된다고 말한다. 정은이 참수부대 창설도 안 된다고 말한다. 사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정은이가 기뻐할 것들만 족집게로 콕콕 찍어서 말씀하시는지… 참. 이렇듯, 북핵에 대항할 그 무엇도 안 된다고 하면, 정작 그 핵이 날아왔을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말씀도 좀 해보라.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고? "미국 놈 나가라!"고 외치면서? 정은이가 차마 동족에게 핵을 쓰겠냐고? 정은이가 과연 누구인가, 지 고모부와 지 형을 눈도 꿈쩍 않고 무참히 죽여 없앤 자이다. 동족? 개꿈은 일찍 깰수록 좋다. 돌고 돌아,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가? 결국 '핵에는 핵!'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떡하든, 정은의 핵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나아가 그를 압도해야 한다. 그제사, 비로소 평화를 말할 수 있다. 그제사, 진정한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이건,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당리당략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리 5000만 민족 생사의 문제인 것이다. 제발, 그 한 점 안주감도 안 되는 알음알이로, 개똥철학 같은 명분과 이상을 더는 읊조리지 말라. 발등에 떨어진 불, 그 냉엄한 현실을, 그 대책을 말해야 하느니. <강문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