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관광섬 제주를 향한 경고음

[진선희의 백록담]관광섬 제주를 향한 경고음
  • 입력 : 2017. 11.06(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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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다. 연인들이거나 단체관광을 온 아이들이었다. 나는 구역질이 날 때까지, 머리가 찢어질 듯 아플 때까지,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무얼 하러 여기에 왔을까? 무슨 권리로? 도대체 무엇을 바랄까? 울긋불긋한 색깔의 잠바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야구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느긋한 약탈자들."

얼마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르 클레지오의 소설집 '폭풍우'에 실린 한 대목이다. 르 클레지오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관광섬 우도를 그렇게 그렸다. 그는 2007년 처음 내도한 이래 몇 차례 제주를 방문했다. 제주를 일컬어 "세계에서 몇 안남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라고 했던 그였기에 그같은 독보적 위상을 위협하는 섬의 표정을 외면하지 못했으리라.

제주도가 예산을 대는 근래의 대규모 문화·학술 행사에서 섬이 들려주는 경고음을 포착하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주최측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들 행사에서 전하는 메시지들은 위기감에 놓인 제주의 현실과 닿아있다.

제주도립미술관, 예술공간 이아 등 5곳에서 동시에 진행중인 제주비엔날레는 허술한 준비 과정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지만 일부 작품들이 꺼내놓은 예술적 발언은 주목된다. '투어리즘'을 주제로 내건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정기엽 작가의 '제주예수'는 자본에 의해 끝도없이 퍼올려지는 지하수의 수난을 일깨운다. 300만원으로 자투리 땅이라도 사기 위해 뱃길을 타고 추자도까지 오르는 여정을 영상으로 담아낸 이원호 작가의 '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위한'은 상투어가 되어버린 '부동산 광풍'이라는 말을 저 멀리 내던지고 싶은 원주민들의 상실감을 대변한다. 스페인 마드리드 태생의 페르난도 가르시아 도리는 '인랜드 제주'에서 관광객들이 섬을 집어삼키고 멀리 날아간 미래의 어느 날을 봤다.

지난 주말 열린 제주학 국제학술대회는 제주 밖 섬을 통해 제주를 들여다보자고 했다.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온 곳은 이탈리아 자치주의 한 곳인 사르데냐 섬이다. 제주와는 역사·정치적 배경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겠지만 두 섬의 처지는 놀랍도록 유사했다. 세계 최고의 장수 지역으로 자연문화의 보존과 관광객 유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고민하는 사르데냐는 동부 해안가에 집중된 군사시설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커지고 있는 섬이었다.

이곳의 사례를 연구한 국내 학자는 이번 학술대회 발표문에서 "토착적 식문화와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에코파라다이스로 부상하는 사르데냐와 군 기지의 집중화로 인한 환경오염과 인간생명에 대한 위협사이에서 사르데냐가 취해온 노선을 어떻게 제주의 발전을 위한 참조체계로 구성할 수 있을지 토론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 땅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거기에 발딛고 사는 토착주민들이다. 우도 토박이 시인은 르 클레지오에 앞서 한층 선명한 시어로 '굴러온 돌/ 박힌 돌 쳐내고 있다// 멀쩡한 이 뽑아/ 임플란트 심어 간다'(강영수의 '병들어 가는 우도 1'중에서)고 노래한 일이 있다. 그래서 지역의 문제를 풀려면 그곳에 몸담고 있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부터 경청하고 그와 관련된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제주 제2공항만 해도 성산읍 주민 한 명이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한달 가량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적어도 제주도정은 지역주민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귀를 닫아서는 안된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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