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사랑은 피고 지는…' 김병심 시인

[저자와 함께] '사랑은 피고 지는…' 김병심 시인
"독하고 야한 시 아닌 사랑 시 썼어요"
  • 입력 : 2017. 12.21(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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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만으로 독하고 야한 분위기를 풍겼던 김병심 시인이 이번엔 10대들과 읽을 시를 담은'사랑은 피고 지는 일이라 생각했다'를 내놓았다.

'사랑'으로 시집이 열린다. '지칠 때가 있지/ 하지만/ 너는 내 남자니까'. 그 뒤에 이런 짤막한 시가 이어진다. '지칠 땐 기대도 좋아요'('별똥별'). '사랑은/ 내 향기가 너에게 배어드는 것'이라는 이 시의 작가가 그일 거라고 짐작할까. 제목만 들어도 세고, 야한 느낌을 풍기는 시를 써왔기 때문이다.

'더이상 처녀는 없다'란 첫 시집 이래 탐라순력도를 현대시로 형상화한 '신, 탐라순력도', 금기의 영역을 불러낸 '근친주의, 나비학파', 지나친 사랑이 괴물이 되는 모습을 표현한 '몬스터 싸롱' 등 일곱권을 발표해온 그다. 근래 소문난 시창작 강좌인 '시원한 세대공감' 기획자로 활약중인 제주 김병심 시인이다.

중학교 문예창작반 시 강의
아이들과 나눌 시 66편 묶어

"10대 빙의 어느 때보다 행복"


이번엔 그리움으로 사랑을 읊었다. 그 시들을 모아 연분홍 표지를 단 여덟번째 시집 '사랑은 피고 지는 일이라 생각했다'를 내놓았다.

문예창작영재반을 둔 한라중학교에서 5년째 시를 가르치며 창작 동기를 얻었다. 그간 나온 자신의 시집에 수록된 시편 중에서 10대 제자들과 나눠 읽을 만한 작품이 마땅치 않아 그 아이들을 위해 새로 시를 써내려갔다.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바지런히 창작한 시들 중에서 150편쯤은 버리고 66편을 골라 묶어냈다.

시집을 펴든 아이들은 좋아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우리 마음을 잘 읽어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럴 만 하다. 시인은 이 '연서'들을 길어올리는 동안 아이들이 즐겨듣는 음악을 틀어놨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었다. 10대로 돌아갔다.

시인은 지난 작업 과정을 털어놓으며 '빙의'란 말을 여러차례 했다. 한 권의 시집이 빛을 볼 때마다 배역에 따라 표정을 바꿔야 하는 배우처럼 해당 시적 화자가 되어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이번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고 한다. '나의 청춘은 부은 눈/ 나의 아침은 밀린 설거지/ 나의 사랑은 썼다가 찢은 말더듬이'('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처럼')일지라도 '좋은 게 뭔지 모르고 좋아하는 지금'이 빛나는 시절이므로.

수록시들이 사춘기의 풍경에만 머문 건 아니다. 제주방언 제목을 붙인 '고랑 몰라'엔 사랑이라 부르지 않아도 사랑인 장면이 있다. '짐승을 잡아 엿을 고는 성탄일// 딸이 전복을 따야 농가목돈 물고// 딸이 소라를 잡아야 학자금 갚고// 사나흘 솥단지 안에서 엿기름이 졸아든다// 엿을 먹어야 지픈 바당에 든다// 솔칵타는 성탄일'이다. 제주판 '성탄제'로 시인이 시댁에서 마주했던 장면에서 따온 시다. 김 시인의 다음 시집은 20대를 위한 사랑 시로 채워질 예정이다. 도서출판각. 8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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