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 첫 시집 펴낸 김신숙 시인

[저자와함께] 첫 시집 펴낸 김신숙 시인
"서귀포는 비린 슬픔 가득한 항구도시"
  • 입력 : 2018. 01.18(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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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을 낸 김신숙 시인은 청소년기 등에 주변에서 겪었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슬픈 이야기'들을 이겨내기 위해 시를 읽고 시를 썼다고 했다.

시인이 되려했던 아버지의 꿈
어쩌지 못할 슬픔 건너온 이들

"문학은 상처를 훑어가는 작업"

'수면을 찡하게 울리는 것이 있어/ 중환자실을 가득 채운 수분/ 모두가 떼로 죽어버리는구나/ 바닷물을 담고 시퍼렇게 뜬 눈으로/ 나는 목격했다// 찡하게 수면을 울리는 것이 있어/ 작은 물고기 떼들이 바닷물을/ 시퍼렇게 울리며/ 살고 싶어서 떠났던 그 바다/ 작은 물고기 떼들이 살아 보려고'('아버지, 제가 시인이 되어 드릴게요'중에서).

시인은 스무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오랜 기간 아버지를 돌봤던 시인은 그 해에 이 시를 썼다. 아버지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생전에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 때문에 술을 자주 마신다고 여겼던 시인은 자신은 꼭 시인이 되리라 결심했다. 첫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를 낸 제주 김신숙 시인이다.

'아내의 제삿날 딱 한번 간판불을 끄는' 이름도 고운 '들꽃 여인숙'으로 문을 여는 시집엔 떠도는 자들의 사연이 흐른다. 시인에겐 고향 서귀포가 '관광 천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가장 남쪽에 있는 남루하고 비린 슬픔이 가득한 작은 항구도시'이기 때문인 걸까. 그는 여느 지역처럼 여성의 성이 사고 팔리는 그 작은 항구도시에서 일찍 죽은 여자들, 멍들고 짓이겨진 여자들의 한 시절을 노래하고 있다.

'아가씨는 식도가 탔어요 입안 가득 물을 담으면 식도가 없는 아가씨가 왈칵 하고 피를 토하지요 나는 아가씨의 하녀, 아가씨가 부둣가 근처 사창가에서 우리의 거리로 이사 왔을 때 귀에 달고 온 밝은 봄 닮은 링귀걸이, 주먹만 했지요 나는 일기장에다 글씨를 쓰지 않고 링귀걸이를 따라 그리고 싶었어요'('아감젓' 중에서).

시인은 이 시집에서 '나와 함께 성장한 서귀포의 곰팡이와 이와 서캐'를 쓰고 싶었다. 시편 곳곳에 그가 청소년기에 겪었던 비릿한 사연들이 스며있다. 미성년자로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거나 낙태수술을 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 옆에는 주민등록증을 위조해주고 미성년자인 줄 알면서 취업을 시키는 어른들이 있었다. 보육원에서 자랐고 대학 문턱을 밟지 못했던 어느 친구에게 가해진 우리 사회의 폭력들도 기억한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그것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슬픈 이야기"들이다. '무엇인지 모를 비극과 비린내로 가득 차 있던 시절'에 시인은 그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시를 읽고 시를 썼다. 참으로 많은 죽음들을 만났던 스무살 무렵 그가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시를 썼던 이유다. 이제 마흔의 나이로 향하는 시인은 말했다. "문학은 아름다운 풍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상처들을 훑어 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그루.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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