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0주년 아픔을 넘어 미래로-3 / 제1부 4·3의 현주소] (2)끊임없는 이념갈등

[제주4·3 70주년 아픔을 넘어 미래로-3 / 제1부 4·3의 현주소] (2)끊임없는 이념갈등
계속되는 4·3흔들기… “이념 공세는 시대착오적”
  • 입력 : 2018. 02.06(화) 2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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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공원 한복판에 조성된 4·3위령탑.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제주도민 화합과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며 평화 의지의 영원함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기원공간으로 조성됐다. 강경민기자

유족회·경우회 화해 분위기속 찬물 끼얹는 행태 근절돼야

2018년 2월 5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혼자 힘으로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휠체어에 의지하거나 가족의 손을 부여잡고 법원을 찾은 노인들이 법정을 가득채웠다. 이른바 '4·3수형생존인'들이었다. 4·3 발발 70년 만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4·3재심청구서'를 제출한 노인들 중 일부와 4·3단체 관계자는 재판 도중 손을 들어 발언을 신청하고 자신들을 적극 변호했다. 일반 법정 같았으면 법정소란죄를 물었을 테지만 재판부는 이들의 발언을 모두 들어줬다. 왜 이들은 70년이나 숨죽이고 살다 백살을 눈 앞에 둔 지금에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을까? 공소사실도 없고 죄명만 남아 있는 이들의 '4·3재심청구소송'은 그 자체로 4·3이 현재진행 중임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지난 2013년 8월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조건 없는 화해와 상생으로 도민 화합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65년간의 반목과 질시로 요원하기만 했던, 4·3의 완전한 해결이 곧 이뤄질 것만 같았다. 그해 시작된 이들 단체의 충혼묘지와 4·3평화공원 합동 참배 행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65년 간 등지고 살았다는 유족과 경찰의 화해는 "우리 모두 다 같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단체가 제주4·3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자 당시 일각에선 "4·3이 완전히 해결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후 보수단체에선 이른바 '불량 위패' 문제를 내세워 4·3 재심사를 요구했다. 지난 2013년 '4·3희생자 추념일' 지정이 추진되자 희생자로 결정된 1만4000여명 중 일부가 무장대와 남로당 핵심 간부 등으로 활동했다며 불량 위패를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제주도는 지난 2016년 초 행자부의 요청이 있었다며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모셔진 희생자 53명에 대한 사실조사를 진행했다.

제주도는 당시 "사실조사가 곧바로 재심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명백하고 실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재심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증거가 있다면 재심의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4·3위원회는 지난해 7월 제21차 전체 위원회의에서 일부의 희생자 결정을 취소했다. 위원회는 당시 유족이 개인 사유로 취소를 요구했다고 밝혔지만 확인 결과 무장대 간부가 취소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4·3평화공원에 안치된 해당 인물의 위패는 '불량 위패'로 분류돼 철거됐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4·3희생자 사실조사 요구와 함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로 4·3 왜곡에 나섰다. 2016년 11월 공개된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은 4·3의 역사를 단 세 문장으로 언급하고, 그마저 왜곡·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주사회에선 4·3유족 등 4·3단체를 비롯해 정치권과 교육계까지 가세한 국정교과서 폐지 운동이 거세졌다.

앞서 국정교과서가 공개되기 직전 대법원은 보수세력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희생자결정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대로 청구를 각하했다. 국내 대표적인 보수인사 13명이 제주4·3 희생자로 결정된 1만4000여명 중 남로당 수괴급이라며 62명의 결정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제기한 소송이었다. 지난해 4월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 등 6명이 제주도지사와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전시금지 청구 상고도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극우인사들은 제주4·3사건과 관련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과 행정소송 등 10건의 재판에서 모두 패소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쯤 되면 물러설 법도 하지만 보수세력의 4·3 흔들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2월 제주항일기념관에서는 제주 보수단체 주관으로 서경석 목사가 강사로 나선 시국강연회가 진행됐다. 서 목사는 제주4·3을 좌익폭동으로 왜곡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에는 제주 보수세력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제주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 준비위원회(이하 '4·3진실연대')'를 구성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4·3의 성격은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며 4·3특별법 개정 작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7일 오후 벤처마루 10층 대강당에서 현길언 교수 초빙 4·3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인 4·3진실연대는 '제주4·3정부보고서'에 대응해 국민들이 만드는 '제주4·3국민보고서'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4·3진상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사과와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마당에 일각의 이념공세는 시대착오적이다. 이젠 이념대립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을 모색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자문위원=문성윤 변호사, 박명림 연세대교수, 박찬식 제주학센터장, 양윤경 4·3유족회장

/특별취재팀=이윤형 논설위원, 표성준 차장, 송은범 기자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 “끊임없는 4·3 이념 논쟁”

4·3은 항쟁과 진압의 양측 모두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갈등의 상처를 남겨놓은 채 미봉되었다.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 사과로 제도적 해결 과정을 밟았지만, 4·3 70주년을 맞이한 올해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이념 대립 구도는 여전하다.

4·3의 인식은 폭동과 항쟁 패러다임이 맞대응해 오다가, 수난의 공유로부터 공동체 관용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세스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시민사회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진행되어 왔으며, 향후 한국사회의 미래 비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공동체 관용까지 나아간 4·3 인식의 큰 흐름에 역행할 사회적 분위기는 앞으로 없을 듯하다. 물론 일각에서 제기되는 국가주의적 폭동론 인식, '불량 위패' 철거 주장 등은 남로당의 무장투쟁을 미화하는 항쟁론에 대한 반론으로서 나름의 4·3 인식을 제기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4·3의 인식 지형이 넓어져 가는 현재 시점에서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수구적 인식으로 비쳐진다.

앞으로의 4·3 논의와 인식은 폭동·항쟁의 이념 대립 구도를 넘어서는 남남화합과 남북통일의 미래지향적 '제3의 길'로 발전해 갔으면 한다. 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남겨진 4·3의 정명(正名) 과제 또한 이러한 틀 위에서 해결되었으면 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는 하귀리 영모원의 추모 글에서 4·3의 떼죽음이 미래 사회 공동체의 화합을 위한 의미 있는 죽음으로 읽혀진다. 냉전으로 인한 학살과 희생의 섬에서 이뤄낸 제주 공동체의 관용 모델은 좌우를 넘어서서 사회 발전에서 중심적인 요소일 것으로 기대한다. 차가운 냉전의 이념 굴레를 벗어버리고 따뜻한 미래를 제시하는 4·3 화법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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