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칠성대는 왜 쌓았나
'별의 나라 탐라' 가능성
"제주정신으로 계승해야"
10여년 전, 그는 '제주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칠성대(七星坮)는 왜 쌓았나'는 질문을 던졌다. 간략하나마, 제주성(城)에서 한라산까지 칠성대를 좇았고 '탐라국 시대 선인들의 정신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깊이있는 연구'를 과제로 남겨뒀다.
강문규(전 한라일보 논설실장)의 '일곱 개의 별과 달을 품은 탐라왕국'은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찾는 긴 여정을 담고 있다. 그가 1991년 늦여름 어느 노인으로부터 들은 칠성대에 관한 이야기가 훗날 제주문화가 품은 수수께끼로 제시됐고 그것이 이제는 약 400쪽 분량의 '별나라 탐라'를 드러내려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칠성대를 '잊혀진 탐라시대를 보여주는 압축 파일'로 비유한 그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주목한다. '돌로 쌓은 옛터가 있다. 삼성(三姓)이 처음 나와서 삼도를 나누어 차지하고 북두칠성 모양을 본떠 대를 쌓아 나누어 살았다. 그 때문에 칠성도라 이름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를 토대로 20여종의 고문헌, 고지도 등을 살핀 그는 삼을라 집단이 5세기 이전 탐라 개국 무렵에 칠성도를 축조했을 것으로 봤다. 칠성도는 세 고을의 경계 표시 기능만이 아니라 탐라의 정치체제와 칠성신앙 등을 확산하기 위한 이념의 구축물이었다.
'별 나라의 주인'으로 풀이할 수 있는 성주(星主)가 다스리던 탐라의 별문화는 제주 곳곳에 흩어졌다. 한라산은 은하수를 어루만지거나 끌어당길 수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백록담은 은하수를 담아내는 커다란 물그릇이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별을 받아내는 바구니로 여겼다. 옛 선비들은 은하수가 흐르는 한라산에서 별뗏목(星차)을 타고 육지를 오가는 상상력을 시문으로 썼다.
민간 신앙에도 별 문화의 흔적이 있다. 그는 1960~70년대 집집마다 있던 칠성단(칠성눌)이 탐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칠성신앙을 가정에서 모셨던 성소로 추정했다. 제주 큰굿에도 별에 관한 화소가 여럿이다. 문전제의 내력담을 품은 문전본풀이도 제주 칠성신화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훼철된 칠성대가 기억 속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별의 도시, 제주'를 제언한다. 그동안 고고학적 자료 등으로 미처 밝혀내지 못한 탐라의 실체를 칠성대로 대표되는 별 문화를 통해 새롭게 구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칠성대는 1500년간 제주섬을 관류해 온 제주정신의 모태이며, 그것은 탐라인들이 북두칠성을 보며 거친 바다를 항해했듯이 오늘날 환태평양 시대의 첨병임을 지향하는 제주특별자치도와 그 섬에 살고 있는 제주인들의 상징적 존재로 계승·발현되어야 마땅하다." 한그루. 2만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