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김성라의 '고사리 가방'

[이 책] 김성라의 '고사리 가방'
몽클락헌 고사리 꺾기 우릴 치유하네
  • 입력 : 2018. 06.14(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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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주일 고사리철 맞아
엄마 따라 나선 체험 여정

자전적 만화 에세이에 담아


고사리철이 되면 제주 지역신문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길 잃음 사고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사리를 꺾으러 나갔던 70대 할머니가 길을 잃고 헤매다 119의 도움을 받아 구조된 일이 있었다. 할머니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그날 하루에만 7명이 고사리를 채취하러 나갔다 길 잃음 사고를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사리는 대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자란다. 그래서 '몽클락헌'(몽톡한)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고가 생기는 일이 잦다. 그래도 제주 사람들은 제사상에 꼭 올라가는 나물인 고사리 꺾는 일을 두려워 않는다. 고사리철마다 중산간 들녘에 길게 차량이 늘어서고 남녀 할 것 없이 들판으로 나선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성라씨의 자전적 만화 에세이 '고사리 가방'은 바로 그 고사리 꺾는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에서 막 피어난 벚꽃이 신호가 되어 고향 제주를 찾은 그가 엄마를 따라 고사리를 채취하는 여정을 담담히 그렸다.

20여회째 한라산청정고사리축제를 이어가고 있는 서귀포 남원 지역 고사리는 청명 이후 하나씩 나기 시작해 열흘 정도 지나면 본격적인 고사리 꺾기가 시작된다. 4월의 1주일 정도가 딱 제 철이다. 지은이는 이 시기 엄마를 두고 '봄이면 바람이 난다'고 했다. 바람난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버스 정류장은 '동새벡'(꼭두새벽)에 첫 차를 타기 위해 모여든 동네 사람들로 그득하다.

"고사리는 아홉 성제렌 헤근에 한 번 꺾어도 한 뿌리서 아홉 번까지 다시 꺾어진다. 게난 뿌리째 뽑아불믄 안 되어. 탁탁 끊어사 된다, 이?"

엄마의 당부를 기억하며 고사리를 꺾고 싶지만 그의 눈엔 쉽게 띄지 않는다. 그러자 엄마가 말한다. "안 보인댄 확확 가지 말앙 고만 앉앙 베렴시믄 앉은 자리서도 서너 개는 봐지매." 그랬더니 정말 하나둘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발 조꼬띠(조끗디) 건"(발 옆에 있는 건) 잘 안보인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어느새 고사리 가방은 불룩해진다. 자연은 걸어다닌 만큼, 정확히 그만큼 수확물을 내어줬다.

조금은 그을린 얼굴로 서울에 다시 돌아온 그는 너무 빠르고 화려해서 쉬이 지치는 대도시 생활에서 작은 것들을 생각해본다. "너무 확확 걷지 말고 발 조꼬띠도 잘 살피면서" 걷다보면 미처 몰랐던 벅찬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잎이 무성한 도심의 벚나무, 은행나무에 돋아난 아기 잎이 새삼 눈에 들어왔던 것처럼. 사계절. 1만25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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