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복정 동화 작가는 제주도처에 널린 매력적인 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을 꾸준히 쓰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드르에 불 놩 덩싹덩싹' 펴내
삼성신화와 '방애' 풍습 연계"아이·어른 같이 읽었으면…"
'막 먼먼헌 엿날'이었다. 설문대할망이 섬 하나를 만든다. 거기엔 산과 오름이 있고 나무와 풀과 돌들이 그득했다. 섬은 눈부셨지만 돌볼 사람이 없었다. 할망은 섬 한가운데 솟은 산의 북녘기슭 굴 안에 세 사람의 흔적을 만들어두고 주문을 건다. "아무 돌 아무 날 아무 시가 뒈민 깨어날 거여. 요 섬을 직헐 운멩을 줴여근에." 마침내 그 날이 되자 세 사람이 깨어난다. 그들은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였다.
제주 부복정 작가의 제주어 그림동화 '드르에 불 놩 덩싹덩싹'은 이런 이야기로 책장이 열린다. 1년 반 정도 준비 끝에 나온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성신화를 바탕으로 들불 놓는 풍습을 덧댔다.
"그리스로마신화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에요. 우리 아이들도 무지 좋아했지요. 그런 매력적인 신들의 이야기가 제주에도 엄청 많습니다. 무려 1만8000 신들이 있다고 하니까요. 그럼에도 제주신화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부 작가는 기회만 되면 제주신화를 작품 속에 담고 싶었다. 어느 날 찾은 들불축제는 창작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삼성혈에서 채화한 불씨로 옛 사람들이 불을 놓던 '방애'를 재현하는 걸 보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삼성신화에서 벽랑국 세 공주가 오곡 씨앗, 망아지, 송아지를 가지고 오는데 그것이 목축문화의 시작이고 방애의 시초 역시 삼을라부터라고 봤다.
이 동화는 농사와 목축을 생업으로 삼던 주인공들이 게으름을 피운 탓에 수확이 줄고 식량이 부족해지며 위기에 처하는 장면에서 전환을 맞는다. 간절한 마음으로 불씨를 피우고 신의 노여움이 풀리길 기원하는 대목에선 거친 화산섬을 일구며 살아왔던 섬 사람들의 지난한 생애가 비쳐난다. 당장 먹을 게 넉넉하다고 섬을 지키는 일에 소홀했다는 고·양·부을라의 반성은 이즈음의 현실과 겹쳐 읽힌다.
제주 한항선 작가의 그림과 어울린 동화는 제주어연구소의 감수를 받아 시종 제주어로 쓰여졌다. 아이들에겐 외국어처럼 느껴질 어휘가 곳곳에 등장하는데 부 작가는 "소멸 위기에 다다른 제주어를 마냥 둘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언어를 우리가 의무감을 갖고 보전해야 한다는 그는 "이 책을 어른들도 같이 읽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준다면 제주어가 좀 더 빠른 시일내에 퍼지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부 작가는 현재 4·3 70주년에 맞춰 가을 출간을 목표로 평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그 다음엔 다시 제주신화로 눈길을 돌리려 한다. 그 때도 제주어로 작품을 쓸 생각이다. 한그루.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