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대전에서 열린 전국계간문예지 축제에 참석한 다층 동인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역 문예지 협의회 등 구축"지역 문예지는 문학 메신저"
지방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해도 서울은 여전히 중앙으로 불린다. 일찍이 대한민국의 특정 지역인 서울의 말씨를 표준어로 정한 언어 정책을 떠올려보시라. 서울과 지방 사이에 놓인 벽은 견고하다.
문학인들 달랐겠나. 전남 강진이 고향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 시인은 1930년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을 발표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해방 전까지 문단에서 소외되었다고 한다. 등단 이후에도 지방에 거주해 '중앙 문단'과는 간격이 컸던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같은 지역의 설움을 딛고 20년 동안 제주에서 문예지가 만들어졌다. IMF 한파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던 시기인 1999년 3월 봄호로 창간호를 쏘아올린 계간문예 다층이다. 다층 창간사 중 한 대목을 보자.
"반(反)자연적이고 반(反)인간적인 문명의 도구로 전락한 오늘의 우리. 우리가 문학을 생각하는 것은, 갈수록 심화되는 노동의 분화와 의사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인간성 상실과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을 회복하는 한 방법으로서이다."
다층이 2018년 가을호(통권 79호)를 창간 20주년(실제로는 2019년) 기념 특집호로 꾸몄다. 결호없이 긴 세월을 버텨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릴 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이번 호는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는 글들이 실렸다. 현재 활동중인 동인, 다층을 통해 등단했거나 초창기부터 동인 활동을 함께했던 시인들의 신작도 소개했다.
다층은 제주를 넘어 지역과 지역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꾀해왔다. 창간되던 해인 1999년 8월 대구, 광주, 전주, 부산, 창원이 참여해 전국지역문예지 편집자대회를 제주에서 여는 등 지역 문예지 협의회를 구축했다. 2000년에는 한·일 신예 시인 100인 시선집을 냈고 이듬해엔 제주에서 '한일시인대회'를 가졌다.
'지역문학 운동으로서 문예지의 역할과 사명'이란 글로 특집호의 첫 장을 연 허형만 목포대 명예교수는 "이제는 지역 문예지들이 '중앙'이 있다는 인식을 아예 갖지 말고 대등하고 과감하게 좋은 잡지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고 했다.
'다층이 걸어온 20년'을 정리한 다층 편집주간 제주 변종태 시인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문예지는 일종의 문학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문예지를 바탕으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양질의 문학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문학적 인프라를 다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 1만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