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새 소설집 고시홍 소설가

[저자와 함께] 새 소설집 고시홍 소설가
"분신 같은 등장인물에 욕망의 바다"
  • 입력 : 2018. 11.15(목) 19: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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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집 '그래도 그게 아니다'를 낸 고시홍 소설가. 욕망 앞에 당당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래도 그게 아니다' 등 9편
욕망 앞에 당당한 주인공 그려

제주시 원도심 등 세밀한 묘사


그는 30대 중반에 소설가로 문단에 발을 디뎠다. 두 권의 소설집을 낸 후 교직 생활과 제주학 탐색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늘상 뛸 생각만 한다는 말(馬)처럼 창작을 멈출 수는 없었다. 침묵을 깨고 2015년 세 번째 작품집을 출간했고 이번에 다시 소설집을 묶었다. '그래도 그게 아니다'를 내놓은 제주 고시홍 작가다.

창작집을 여는 글에서 그는 '욕망'이란 말을 꺼냈다. 욕망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함, 또는 그런 마음'을 뜻한다.

"욕망은 무의식에서 발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초적 영혼인 욕망을 입과 귀에 거슬리는 '똥'으로 치부한 나머지 '꿈(이상·희망)'이라 암유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갑옷으로 욕망의 뿌리, 욕망의 바다를 가리려 한다. 욕망은 인류의 주인이라 했다. 사람은 욕망이 있으므로 활동한다는 뜻이다."

'폭풍의 길목'에서 표제작인 '그래도 그게 아니다'까지 아홉 편의 단편엔 그같은 욕망이 흩어진다. 성취욕, 애정욕, 성욕, 자존과 자아실현, 사회적 안정 욕구 등을 품은 소설 속 주인공들은 거센 파도치는 한 시절을 건너왔다. 중년이나 황혼 녘에 돌아본 과거의 마디마디엔 질끈 눈감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작가에서 떼어져 나온 분신의 실루엣 같은 인물들은 욕망 앞에서 당당하다. '마지막 행운'에서 30년 만에 오 선생과 만난 제자 나현주, '태풍의 눈'에서 고등학교 때 또래 남학생의 아이를 밴 김주혜, '나를 뭘로 보고'의 한준영이 그랬다.

'그래도 그게 아니다'에선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이유로 사내 아이를 낳아야 되는 시대에 남편과 강제 별거해야 했던 강덕산이 나오는데 가부장제 사회의 희생양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남편이 앳된 여자를 통해 아들을 갖자 친정 마을에 보금자리를 트는 과정에서 강덕산은 '시집살이에서 해방됐다'고 느낀다. 남편은 늘그막에 병을 얻고 강덕산에게 용서를 구한다. 강덕산은 대답 대신에 마음 속으로 쾌차 못할거면 내년 초파일 전에 세상을 뜨길 바란다. 남편 몫의 연등 보시를 놓고 고민에 빠질까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소설은 대부분 제주가 배경이다. 작가는 탑동에서 오현단 인근 가락쿳물까지 제주시 원도심의 오래된 지명과 장소 등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신당과 오름, 천주교 역사 등 제주문화의 한 풍경도 자리잡고 있다. 제주 땅에서 빚어낸 소설 한 편이 더없이 그리운 계절에 이 섬의 기억이 그렇게 살아나고 있었다. 작가는 이즈음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다룬 장편을 구상중이다. 문학나무. 1만4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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