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김정희 제주어 동시 그림책

[이 책] 김정희 제주어 동시 그림책
깅이덜 불러내고 보말 잡던 그 시절
  • 입력 : 2018. 11.22(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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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제주 생활문화'를 담아낸 김정희 제주어 동시 그림책 삽화. '뿡겔뒈싸불라 뿡겔뒈싸불라'의 장면이다.

사라져가는 제주생활문화
함덕리서 유년 기억 소환

"살아갈 힘 되어준 그날들"

'할마닌 바당이 가민/ 돌트멍에 쿠살도 골겡이로 옴파내엉 테왁 망사리에 담곡/ 돌고냥 숙덱이당 뭉게 나오민/ 뿡겔뒈싸불라 뿡겔뒈싸불라/ 놀렐 불르멍/ 뭉게 데맹이 뒈쌍 망사리에 담곡'.

김정희 동시인이 쓴 '뿡겔뒈싸불라 뿡겔뒈싸불라'란 시의 한 대목이다. 표준어로 옮겨놓으면 도무지 그 맛을 살려내기 어려운 제주어 동시들로 그가 '사라져가는 제주 생활문화'를 담아낸 그림책을 묶었다.

제목이 이렇다. '청청 거러지라 둠비둠비 거러지라'. '뿡겔뒈싸불라 뿡겔뒈싸불라'처럼 따로 풀이할 도리가 없는 노랫말이다. 제주 사람들이 갯가로 나가 깅이(게)가 숨은 곳에 멸치젓 국물을 뿌린 뒤 밖으로 기어나오길 기다리며 부르던 노래였다.

이번 제주어 동시 그림책에는 그같은 아스라한 풍경들이 15편에 걸쳐 펼쳐진다. '보말 심으레 글라', '바농 낚시', '멜 들엇져', '솟덕 솟덕 솟덕', '범벅', '가름 도새기', '등피', '신 땜질 하르바지', '오일장' 등으로 대부분의 시편은 '할마니 두릴 적인', '하르바지 두릴 적이'로 시작된다. 뒤쪽엔 표준어로 풀어놓은 시를 수록했다.

이 작품들은 시인의 고향인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자라며 봤던 장면이 바탕이 되었다. 시인은 "어린 시절 무엇을 하며 놀았을까"를 떠올리며 지금의 그를 만든 기억들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난 뒤 평상에서 별을 보며 여름밤을 보냈던 일, 통시 담을 헐고 나온 도새기를 잡기 위해 온 집안이 벌인 전쟁, 할머니 방에 있던 호야, 종일 친구들과 놀았던 바다 등이 글감이 되었다.

'물 잘 싸는 살이엔/ 앞이 진여만 가도/ 돌보말에 먹보말 수드리보말에/ 토데기보말 각데기보말 까메기보말 매옹이보말/ 바위트멍에 수두락허영 신다'('보말 심으레 글라'중에서)

바다로 가면 보말, 깅이가 지천이었다. 이제는 귀한 해산물이 된 그들의 존재는 제주 바다 환경의 세찬 변화를 증거한다. 거무튀튀한 갯돌 틈에서 먹을거리를 캐내는 모습은 빛바랜 흑백 사진에만 남아있다. 정 많은 삼춘들,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과 더불어 늘 많은 것을 내주던 바다를 끼고 살았던 시인은 그 시절을 오래도록 붙잡고 싶어 제주어 동시를 썼다.

"없는 것이 더 많았던 때였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들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 시인의 말이다. 그림은 달과 작가가 그렸다. 한그루.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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