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송강호 열연·캐릭터 향연에도 아쉬움

'마약왕' 송강호 열연·캐릭터 향연에도 아쉬움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신작…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 입력 : 2018. 12.16(일) 13:03
  • 연합뉴스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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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잘 차려놓은 뷔페 같다.

 국내 티켓파워 1위 배우인 송강호부터 웬만한 영화의 주연을 맡을 만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대거 합류했다. '내부자들'로 호평과 흥행을 동시에 거머쥔 우민호 감독이 총지휘를 맡아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음식은 차고 넘친다. 한데 나중에 뭘 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뷔페처럼 영화'마약왕'도 장면별로 강한 인상을 주지만, 마지막에 진한 여운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1970년대 부산. 우연히 마약 밀수에 가담한 하급 밀수업자 이두삼(송강호 분)은필로폰 수출에 눈을 뜬다.

 특유의 눈썰미와 빠른 판단력을 지닌 그는 국내에서 필로폰을 제조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를 붙여 일본으로 수출하고 마약업계 거물로 떠오른다.

 그의 성공을 추동한 것은 개인적 욕망이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전화 한 통 넣을 만한 든든한 뒷배를 가지겠다는 욕망은 그를 물불 가리지 않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수출과 반일은 애국 행위가 되고, '잘살아보세'라는 구호와 함께 물질적 풍요를 쫓던 시대 상황도 그의 욕망을 부추겼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비리로 점철된 한 남자의 비뚤어진 욕망과 한국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을 비춘 영화는 이미 많이 나왔다. 당장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2012)과도 오버랩된다.

 우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과 비교도 피할 수 없다. '내부자들'이 조폭 안상구(이병헌), 검사 우장훈(조승우), 언론인 이강희(백윤식)가 삼각편대를 이뤄 팽팽한 긴장감을 줬다면, '마약왕'은 오로지 송강호에게 기댄다.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초반 특유의코믹 연기부터 부가 쌓일수록 서서히 예민해지면서 난폭해지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마지막 20분간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약에 취한 연기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힘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송강호의 열연에도 이두삼 캐릭터는 매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 편이다. 흥망성쇠가 불 보듯 빤히 보이는 그의 욕망에 쉽게 편승할 수 없어서다. 공감하기보다는 제삼자로서 그의 인생을 관망할 뿐이다. 그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나 정점에 오를 때나 기승전결이 느껴지지 않는 연출 탓일 수도 있다. 이는 한남자의 연대기를 차분하게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로 읽히기도 한다.

 영화는 1972년 유신체제가 들어선 뒤부터 1980년 서울의 봄까지를 다룬다. 김대중 납치사건과 같은 역사적 사실은 뉴스 화면을 통해 짧게 스쳐 지나간다. 그런 시대를 불법이지만, 그 나름대로 애국한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남자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추악한 시대상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두삼의 성공은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남편의 불법을 알고도 눈감는 아내(김소진), 마약 사업 입문을 돕는 동업자(이희준), 로비스트(배두나), 마약감시과 비리형사(이성민), 사촌 동생(김대명), 이두삼을 일본 야쿠자와 연결해주는 조폭 보스(조우진) 등 금전 관계 등으로 얽힌 수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충무로에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저마다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낸 뒤 소리소문없이 퇴장한다. 캐릭터의 향연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다 보니 전체적인 응집력을 떨어뜨린다. 이두삼을 위한 소모품, 인생의 들러리 정도로 그려지는 점도 아쉽다.

 이두삼과 마지막까지 스크린을 지키는 인물은 정의를 외치는 열혈 검사 김인구(조정석)다. 조정석이 호연했지만, 무게중심은 송강호 쪽으로 확연히 기운다.

 1970년대를 구현하기 위해 공을 들인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영화 내내 흐르는 70년대 팝 음악과 클래식은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범죄나 약물 묘사의 수위는 꽤 높은 편이다. 12월 19일 개봉. 청소년관람 불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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