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세 번째 시집 양민숙 시인

[저자와 함께] 세 번째 시집 양민숙 시인
"아물지 않은 수많은 관계 떠올렸다"
  • 입력 : 2019. 01.24(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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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숙 시인은 신작 시집 '한나절, 해에게'를 통해 "아물지 않은 수많은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언젠가 슬픔이 되는 시간
내일은 흐려질 관계 속에

작고 오래된 것들에 시선


시인의 목소리는 작고 오래된 것들 앞에서 나직해진다. 만날 때마다 매번 틀린 이름으로 불리는 관계를 뒤로하고 일렁이는 파도와 거친 흙이 있는 공간으로 발디디면 봄 날의 따스함이 있다.

'서로의 외면이 따뜻해, / 스르륵 가슴이 울렁이는 소리가 들려요/ 세상이 아무리 늙어가도 늙을 줄 모르는 할머니가/ 풀어놓는 연애담// 봄 날, 마늘밭이 익어가요'('봄 날 마늘밭'에서).

시인은 마을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말하거나 글쓰는 일보다 듣거나 읽는 걸 더 좋아하는 시인은 더 낮은 곳, 더 구석진 곳으로 자꾸만 몸이 쏠렸다. 나와 너를 묶어 '우리'가 되고 싶었던 치열했던 지난 날들이다.

제주 양민숙 시인이 4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한나절, 해에게'는 그 여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10년 가까이 금릉꿈차롱작은도서관을 이끌어오다 2017년 말 이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나온 시인은 이 시집에 '떨어져 있으니 비로소 꺼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의 시에는 '파도의 시간', '시간 흥정', '타인의 시간', '어머니의 시간', '시간을 수선합니다' 등 '시간'이란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간은 새 것을 낡은 것으로 만들고 젊은이를 노인으로 바꾼다. 사물은 녹이 슬고 몸은 아파온다.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오래 전 기억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를 밀어내며/ 살아온 순서가 뒤섞인 자리, / 모두 나눠주고 덩굴만 울창해진/ 뉴런숲의 겨울나무/ 한그루, //어머니'('겨울나무')처럼 거꾸로 가는 시간이 있다. 시간은 언젠가 슬픔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표제시인 '한나절, 해에게'에선 '절정이듯 펴지는 해바라기/ 난 절정이 되기 싫어/ 이 시간이 흘러 어제로 남고 싶지 않아'라며 영원할 수 없는 순간들을 안타까이 노래한다.

자꾸만 잠을 깨우는 '부스러진 시간'이 흐르는 곳엔 '좋아하지 말자/ 사랑하지 말자/ 같은 하늘을 이고 함께 살기만 하자'('너에게 물들어-용수 등대')는 위태로운 길이 있다. 그래서 시인은 '내일은 잊힐 흐려질 관계' 대신에 '오늘 당신을 안아줄' 온기가 더 그립다. 저 먼 바다를 건너가려면 서로가 푸른 파도에 물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 시인은 "낮은 곳에서 만났던, 우리가 되고 싶었던, 비로소 바라볼 수 있었던 아물지 않은 수많은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나와 너를, 결국 우리를 보듬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우스트. 9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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