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기지의 섬, 절망에서 구원으로 가는 길

[책세상] 기지의 섬, 절망에서 구원으로 가는 길
오키나와 마타요시 에이키 소설집 '돼지의 보복'
  • 입력 : 2019. 02.08(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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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 속 한 장면은 동시대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견줘진다. 하루키 소설의 제이가 도쿄의 어느 술집에 놓인 주크박스 음악을 들으며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면 그가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내놓은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의 주인공 조지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주크박스로 향한다.

 이를 두고 평자는 두 소설이 전혀 상반된 현실을 그린 게 아니라 미·일 안보 체제가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얼마나 다르게 기능하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한쪽에는 막대한 경제적 부와 평온한 일상을 가져다주지만 다른 한쪽에는 전쟁의 상흔과 차별을 남긴다는 거였다.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를 쓴 마타요시 에이키(又吉榮喜)의 소설집 '돼지의 보복'이 나왔다. 마타요시는 전후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소설집에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표제작과 '등에 그려진 협죽도' 두 편이 실렸다.

 '돼지의 보복'은 오키나와 문화를 상징하는 돼지, 풍장(風葬), 민간신앙의 성소를 일컫는 우타키(御嶽)를 주제로 했다. 도살장으로 향하던 돼지가 트럭에서 빠져나와 스낵바 '달빛 해변'으로 난입하면서 시작되는 소설은 절망에서 구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소설이 발표된 1995년은 오키나와에서 미군이 12살 소녀를 성폭행한 일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오키나와에서는 군사기지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직접 체감하며 미군기지 철수를 외쳤다.

 '등에 그려진 협죽도'는 마타요시의 미군기지 관련 소설 중 하나다. 1981년 '아티스트 상등병'으로 발표되었다가 1996년 단행본으로 묶이면서 제목을 바꿔 달았다. 일본 복귀 전인 베트남 전쟁 시기 오키나와를 무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키나와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젊은 남녀를 등장시켰다.

 번역을 맡은 곽형덕 교수(명지대 일어일문학과)는 상처투성이지만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삶을 담은 두 소설이 참회를 통해 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 호평을 받았던 점을 비판적으로 읽었다. 곽 교수는 "참회는 감정을 정화하고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지만 내면의 고통을 만들어낸 현실에 대한 분노 또한 정화할 위험이 있다"며 "참회로 치유되는 것은 우치난추(오키나와인)인가 야마돈추(본토 일본인)인가? 아니면 우리들인가? 누가 이들의 참회를 듣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창비.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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