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5)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5)
  • 입력 : 2019. 03.28(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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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2-2. 청춘들의 우격다짐



음식을 나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우미들이 용찬과 눈이 마주치자 웃음으로 반가움을 드러냈다. 식당을 드나들며 한두 번씩 보았던 화교들이었다. 용찬을 본 리화가 반갑게 맞으며 앞치마를 건넸다.

무슨 상을 받은 분이 친지들을 초대하여 자축연을 여는 자리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중년 남녀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예상 못 한 눈앞의 상황이 마뜩지 않은 듯 서로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리화 어머니가 그들을 알아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갔다.

"점심 좀 먹으러 왔는데. 안 되나요?"

"과장님. 어쩌지요? 좀 소란스러워도 괜찮으시다면 저리 앉으세요."

삽화=고재만 화백





"당신 엿장수야? 누구 맘대로 올려? 당장 내려요"
"어휴, 식자재비도 오르고 인건비 제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과장님"


그들이 좌중을 살피며 비어있는 구석 자리에 앉자 축하객 중 한 사람이 다가와 깍듯하게 인사했다. 동반한 여인이 인사하는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나 나이 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부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삼선 짬뽕' 두 그릇을 시켰다.

인사했던 사람의 제안으로 축하연 자리가 잠시 조용해지기는 했으나 술병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장내는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왕 사장은 시킨 음식 외에 탕수육과 맥주 두 병을 서비스로 내놓았다. 용찬이 음식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과장이라는 사람이 불러 세웠다.

"너 몇 살이지?"

용찬은 초면에 반말하는 것이 언짢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열일곱입니다."

"미성년자 구만? 언제부터 여기서 일해?"

말본새로 보아 트집 잡으려는 게 분명했다.

"오늘만요. 손이 부족해 도와주고 있어요."

"그래? 너희 사장 좀 오라고 해."

그는 명령조로 말했다. 용찬은 주방 일에 바쁜 왕 사장에게 전달했다. 음식 배출구를 통해 홀을 잠깐 바라보던 왕 사장은 그들이 음식을 다 비울 즈음 음식 자국으로 얼룩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왕 사장이 늦게 나타난 게 못마땅해선지 과장이라는 사람은 볼멘소리를 했다.

"삼선 짬뽕값이 언제 이렇게 올랐어?"

"아이구 홍 과장님, 우린 몇 년째 천팔백 원 받다가 금년 3월에야 이백 원 올렸어요."

왕 사장의 말을 들은 과장은 미간에 바늘을 세우면서 찡그렸다.

"당신 엿장수야? 누구 맘대로 올려? 당장 옛날 가격으로 내려요.""어휴, 이천 원 받아도 식자재비도 오르고 인건비 제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과장님."

왕 사장은 나이 어린 과장 앞에 굽석거리며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못 내리겠다는 말이오?"

"홍 과장님 제발 저희 입장 좀 생각해주십시오."

"두고 봅시다."

그는 그악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계산대로 가더니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로 가져온 탕수육과 맥주까지 외상 장부에 달아놓고 나갔다. 왕 사장 부부는 안절부절못했다.

음식점을 관장하는 도청의 과장이었다. 이런 왕 사장의 심기도 모르고 축하연 자리에서 커다란 박수 소리가 터졌다. 왕 사장은 망연자실 서 있는 애꿎은 부인에게 화풀이하듯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저 그릇이나 치워."



왕 사장에게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단골 고객인 공무원들이었다.

입간판을 밖에 내놓으면 경찰이 들어와서는 불법이라고 호통을 쳤고, 식당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술을 판 주인 잘못이라며 힐난을 했다.

음식값을 올리면 세무서에서 들이닥쳐서 세무 조사한다고 난리였다. 변변한 장부도 없으니 날마다 들러 수금하는 은행원들이 기록해 준 입금 통장만 보고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을 때렸다.

바빠서 위생교육에 빠지거나 검사에 걸리면 영업정지가 내려왔다. 사정이 이런데 직속 과장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일어날 후폭풍을 두려워하며 왕 사장은 며칠을 전전긍긍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과장의 몽니는 며칠 뒤 드러났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에 위생검사 나왔다며 세 사람이 주방으로 들이닥쳤다. 음식을 조리하던 왕 사장은 왜 하필 바쁜 시간이냐고 따졌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주방 곳곳을 사진 찍고 도마를 칼로 긁어내 병에 담아가고 쓰던 행주를 압수해 갔다.

죄인처럼 마음 졸이며 판결을 기다렸다. 체념하며 잊혀질 만 할 때 쯤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왕 사장은 부들부들 손을 떨면서 계고장을 펼쳤다. 식중독 등 여러 가지 균 검출, 위생 불결이라는 판정과 함께 영업정지 15일이 내려졌다. 왕 사장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영업정지를 맞으면 장사 못해 손해도 크지만 식당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생각하니 나오는 것이 한숨이었다. 왕 사장이 낙담하는 걸 지켜보던 부인이 계고장을 빼앗아 내용을 확인하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뭘 고민해요. 돈으로 해결해야지요. 돈 싫어하는 놈 있어요?"



왕 사장은 결국 뇌물 주고 음식값 올린 격이 되어 던적스러웠지만
납작 엎드려 절까지 했다


왕 사장은 부인이 마련해준 봉투를 들고 수소문하여 늦은 시간 홍 과장 집을 찾아갔다. 그의 나이에 맞지 않게 집은 크고 정원은 넓었다. 단호한 표정을 짓던 홍 과장은 왕 사장이 내미는 봉투를 보고는 태도를 바꿨다.

"위생검사하고 나면 결과 보고서가 남기 때문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어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홍 과장은 말을 흐리며 왕 사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왕 사장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라는 부인의 말이 생각났다.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영업정지만 피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럼. 내가 벌금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할 테니 대신 음식값은 마음대로 하시오."

"아이고, 고맙습니다."

왕 사장은 결국 뇌물 주고 음식값 올린 격이 되어 던적스러웠지만 납작 엎드려 절까지 했다.

그리고 며칠 후 200만 원의 벌금이 떨어졌다. 두 달 치 수익에 상당하는 금액이었지만 부인은 가게 닫고 노는 것보다 낫다고 왕 사장을 위로했다.



그해 봄이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용찬이 리화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방 밖이 소란스러웠다. 열심히 공부하던 리화가 소리 나는 곳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오빠다' 하며 일어서서 나갔다. 열린 문 틈으로 보니 등치가 큰 청년을 마루에 앉혀놓고 왕 사장이 닦달하고 있었다.

"아니 이놈아 하라는 공부는 않고 무슨 싸움질이여? 아버지가 어떻게 벌어서 학비랑 용돈 보내는 줄 알기나 해?"

얌전히 고개 숙이고 있던 아들이 문 열고 나온 리화를 보자 잊혔던 자존심을 되찾은 듯 고개 세우며 부친에게 따졌다.

"아니 날 뙤놈, 짱꼴라라고 놀리는데 나가 병신이라 참으란 말여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챈 리화는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상황을 지켜 보았다.

"이놈아, 그 말이 어떻다고 그래? 뙤놈은 대국 사람이란 뜻이고 짱꼴라는 중국 아이 라는 말인데 뭐가 어때서? 이놈아 남의 나라 살면서 고맙습니다 해야지. 그걸 못 참고 무슨 싸움질이여? 참아야 인을 이룬다는 공자님 말씀 안 배웠냐?"

부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산이 대꾸했다.

"아버지. 지금이 어느 시댄데 그런 소리예요? 아버진 세계화 말도 못 들어 봤어요? 몇 년 전에 중국과 한국이 수교도 했단 말이에요. 이젠 우린 할아버지 고향으로 갈 수도 있다구요. 까짓 것, 아니꼬우면 중국으로 가버리면 되잖아요?"

왕강룡 씨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리화를 보고 씩 하고 웃었다. 리화도 얼떨결에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대견스럽게 생각 되었다.

'그래도 육지 보내 놓으니 귀 뚫렸다고 들은 건 있구나. 싸움질만 하는 줄 알았더니 키운 보람 있네.' 그러나 왕 사장은 다시 금산을 보며 정색 했다.

"중국 가면 누가 공짜로 먹여준대? 잔소리 말고 학교나 열심히 다녀."

"싫어요. 나 학교 안 다닐 라요."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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