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실버세대] (3)박태호 외국어전용 택시 기사

[꿈꾸는 실버세대] (3)박태호 외국어전용 택시 기사
1평짜리 직장에서 찾은 행복… "나는 관광 전도사"
  • 입력 : 2019. 04.16(화) 2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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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1년 간 영어공부에 매진하면서 영어로 승객과 소통이 가능한 외국어 전용 택시기사를 꿈꿔 온 박태호씨.

차별화된 택시 위해 퇴직 후 1년 간 영어회화 공부
항공사 근무시절 몸에 밴 서비스 마인드 십분 발휘


누군가 택시 기사 일을 '1평짜리 직장'이라고 했다. 1평도 안 되는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택시 기사의 일상을 빗대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또 이 1평짜리 택시를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고된 일터로만 보는 이들도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인생의 행복을 찾는 소중한 직장으로 생각한다. 박태호(69)씨는 자신은 후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 스스로도 "이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일에 대한 벅찬 보람을 느끼고 있다.

박씨는 국적항공사 2곳에서 30년간 근무하다 지난 2006년 정년 퇴직했다. 당시 박씨의 나이 55세였다. 박씨는 "55세면 너무나 젊은 나이이지 않느냐"면서 "퇴직이 점점 가까워질 무렵에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한다는 부담에 고민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그 때 박씨의 눈에 들어온 게 한 경제 전문지에 소개된 은행장 출신의 택시 기사 이야기였다. 박씨는 "그가 택시기사를 하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한 과정, 또 택시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는 모습들을 기사로 접하며 큰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정년 퇴직하자마자 택시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바로 택시 기사 일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가 택시 운전대를 잡기까지 아내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박씨는 "정년 퇴직 후 한동안 아내와 여행을 다녔는 데 어느 날 아내가 '택시 기사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먼저 물어왔다"면서 "아내가 먼저 이렇게 권유하고 힘을 실어주니 비로소 택시 기사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전 직장 상사의 조언도 한 몫했다. 박씨는 "퇴직 후 전 직장 상사를 만난 적이 있는 데, 내가 택시 기사를 할 거라고 얘기하니까 상사는 그렇다면 미국 뉴욕의 모 택시 기사처럼 특별한 택시 기사가 되라고 조언했다"면서 "뉴욕의 어느 택시 기사는 손님들을 위해 샌드위치와 신문을 미리 준비하는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너도 그런 택시기사여야 한다는 게 직장 상사의 조언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이 때부터 학원을 다니고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며 1년 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영어로 승객과 소통이 가능한 외국어 전용 택시 기사를 꿈꾼 것이다. 어느 덧 외국어 전용 택시기사 일을 한지도 13년이 됐다. 그동안 외국인 단골 손님도 여럿 확보했다. 무엇보다 그의 친절한 서비스가 외국에서도 입소문을 타면서 박씨는 손님을 찾아 헤매는 택시 기사가 아닌 손님이 먼저 찾는 택시기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외국인 손님의 90%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국적으로 그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는 예약을 의뢰하는 외국인들의 글이 수백개 올라와 있었다.

박씨는 "항공사 일을 하다보니 서비스 정신은 몸에 뱄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손님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음식점도 관광객이 가는 곳이 아닌 현지인들이 가는 곳, 제주의 식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골라 간다. 손님이 방문할 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술술 소개할 수 있게 미리 공부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자기관리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매일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운동과 목욕을 끝낸 후 색상이 밝은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택시에 좋은 냄새가 풍길 수 있게 향기가 나는 제품들을 달아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박씨는 "나 스스로를 제주 관광 전도사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생각하니 복장, 말투, 건강 관리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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