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7주년/ 제주돌담의 미래] (2)원담을 쌓는 사람들

[창간37주년/ 제주돌담의 미래] (2)원담을 쌓는 사람들
"무너지면 다시 쌓고"… 70년 이어진 원담의 시간
공동체 담긴 제주 전통 어로문화
제주시 260여 곳… 대부분 훼손, 금능리 해안엔 원담 3곳만 남아
'원담지기' 이방익·이상수 부자 "누군가는 이어가야" 전승 과제
  • 입력 : 2026. 04.22(수) 03:00  수정 : 2026. 04. 22(수) 07:08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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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금능원담에서 최근 강풍과 높은 파도에 무너진 원담 위에 다시 돌을 쌓는 보수 작업을 하는 사람들. 박소정기자

[한라일보]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금능해변. 썰물 때가 되자 얕은 바다 위로 원 모양으로 길게 이어진 돌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닷가에 돌로 담을 쌓아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가두어 잡는 제주의 전통 어로 형태인 '원담'이다.

"강풍에 다 무너졌어." 무너진 원담 앞에 선 이상수(65)씨가 말했다. 일주일 전 강풍과 높은 파도에 원담 곳곳이 무너졌다. 그는 바다에 흩어진 돌을 주워 다시 쌓아 올렸다. 무너진 원담을 보수하는 일은 그의 일상이 됐다. 8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원담 장인'으로 알려진 이방익(95) 어르신이다.



┃남아있는 원담 원형

원담은 바닷가에 둥글게 돌을 쌓아 만든 담이다. 해안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돌을 이용해서 쌓았다. 바다 쪽은 비스듬하게 돌을 쌓고, 육지 쪽으로는 수직으로 돌을 쌓았다. 밀물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이 되면 수직의 돌담에 막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한 '돌 그물'을 마을주민들이 함께 쌓아 관리했다. 이 곳 금능원담도 마을 공동체 안에선 누구나 원담에 갇힌 멜(제주어로 '멸치'), 따치(독가시치), 돔, 장어, 오징어 등 바닷고기를 잡기도 하고 서로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담 원형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시 조사에 따르면 과거 제주 해안에는 260여 곳의 원담이 있었지만, 어로 기구의 발달과 어로 방법의 변화로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현재 대부분 훼손된 상태다. 여기에 태풍과 높은 파도로 허물어진 뒤 제 때 보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흔적만 남거나 사라지게 된 원담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금능리는 원담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곳으로 꼽힌다. 금능해수욕장 바로 옆에 남아있는 3개의 원담 원형이 이를 보여준다. "금능리에는 7개의 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일곱 개의 원 중 네 개의 원은 파도에 쓸려 사라져 없고, 현재 보존되고 있는 원담은 소원, 마른원, 모살원이다." 금능원담 입구에 있는 안내문이 설명을 덧댄다.

70년 '원담지기'로 살아온 이방익 어르신(오른쪽, 이상수 제공)과 그 뒤를 이어 '원담지기'가 된 아들 이상수 씨.



┃대를 이어 지키는 원담

금능리에 원담 원형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무너지면 다시 쌓아온 마을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방익 어르신도 그들 중 한명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원담을 관리해왔다. 군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허물어져 방치돼 있던 원담을 보게 됐다. 이 곳을 관리해오던 마을 어르신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후 원담이 무너진 채로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집은 바다를 바라보면 원담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 탓도 있었던 것일까. 무너진 마을의 원담을 보게 되면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썰물이 되면 바다로 나가 원담을 살폈고, 담이 허물어지면 다시 쌓았다. 그렇게 20대 때부터 시작된 '원담지기'의 삶은 아흔의 나이가 될 때까지 이어졌다.

"아버지는 70년 가까이 원담을 돌보는 일을 해 오셨어요. 자식보다 원담을 먼저 챙기셨던 분입니다. 어릴 때는 그런 모습에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 뒤를 이어 '원담지기'를 하게 된 지금은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나이가 점점 들면서 원담에 다니는 게 위험해지게 됐어요. 그래도 아흔까지 이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 연세가 많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몸 상태가 좋으실 때는 집 앞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시죠. 그러다가 썰물이 되면 저를 불러 '원담에 가서 보고 오라'고 하세요."

'원담지기'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전하는 이상수 씨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이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원담을 지키고 있다. 그가 '원담지기'를 이어받게 된 것은 해양수산 분야 공무원을 하면서 제주 해양수산 문화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다. 2018년부터 3년간 아버지와 함께 원담을 지키며 담을 쌓는 방법을 배웠고 공직을 퇴직한 후 '원담지기'의 삶을 시작했다.

"원담은 선조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어업 방식이며, 높은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제주의 해양수산 문화이자 마을의 보물이며 재산이에요. 금능원담의 총 길이는 500m, 높이 1m, 폭 2m 내외이며, 안 쪽은 수직으로 돌을 쌓고 바깥 쪽은 비스듬히 돌을 쌓아 물고기가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만들어졌어요.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로 보존 관리하고 있는 원담이라 훼손하거나 돌을 채취해서는 안 돼요."



┃처음 모인 마을 청년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바로 '누가 이를 이어갈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원담이라는 옛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원담에는 무너지면 함께 쌓았던 공동체 문화가 담겨 있어요. 제가 건강할 때까지는 원담을 관리해 나갈 생각이지만 이후 누군가가 이어서 해줘야 전통이 이어갈 건데, 그렇지 않으면 원담이 파도에 그냥 무너져버려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섭니다. 행정이 원담을 제주의 사라져 가는 해양수산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복원과 계승에 필요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걱정 속에서도 그는 그 '희망'을 놓친 않았다. 이날 금능원담 보수 작업에 박용근 이장을 비롯한 금능리마을회와 청년회, 그리고 돌빛나예술학교 돌챙이들, 제주대 돌담동아리 '돌보다' 대학생들 등 20여 명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무너진 돌 위에 다시 돌을 쌓았다.

평소에는 무너진 원담이 보이면 혼자 해왔지만 이번 기상악화로 원담이 너무 많이 무너진 탓에 감당하기 힘들어 도움을 요청했다. 무엇보다 마을 청년회가 그 손길에 처음으로 응하고 함께 해준 것에 대해 그는 의미를 더했다. "원담 보수 작업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정말 고맙게도 마을의 청년들이 나와서 함께 보수해줬어요. 의미있는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이날 보수 작업에 함께한 금능리청년회 김남규 씨는 "어릴 때 '고망(제주어로 구멍)낚시'도 하고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으러도 가고 했던 추억이 깃든 장소"라며 "마을의 자산인 원담을 복원하는 작업에 첫 참여했는데, 옛 생각이 나기도 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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