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범의 편집국 25시] 그때 그 도지사

[송은범의 편집국 25시] 그때 그 도지사
  • 입력 : 2019. 06.20(목) 00:00
  •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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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이 발생한 지 한 달 후인 1948년 5월 5일 제주중학교에서 딘 미군정장관과 안재홍 민정장관, 조병옥 경무부장, 송호성 경비대사령관,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등 9명이 참석한 가운데 '5·5 최고수뇌회의'가 열린다.

이날 회의 전 이미 '강경 진압'을 염두에 둔 딘 미군정장관은 '화평전술'을 주장했던 김익렬 9연대장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박진경 중령을 임명해 제주4·3에 대한 강경 진압을 추진토록 했다.

이후 제주에서는 정부에 의한 대대적인 양민학살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60년 후인 2008년 9월 17일. 제주시 탑동의 한 식당에서도 비슷한 회의가 열린다. 유덕상 제주도 환경부지사와 김형수 서귀포시장을 비롯해 당시 국정원 제주지부 정보차장과 제주경찰청 정보과장, 해군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 대책회의'가 개최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제주도 관계자는 "걸림돌은 제거하고 가야 한다. 해군이 더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고, 국정원은 "제주지검에 엄격한 법 집행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신구속 등이 있어야 반대수위가 낮아진다"며 동조했다.

이날 회의로 '강경 진압'이 확정되면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으로 체포·연행된 사람은 무려 697명에 달한다.

진실이 밝혀진 2019년,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해군기지에 대한 추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정작 이에 동조한 제주도는 사과는커녕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도민의 대표인 원희룡 지사가 나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제주도지사가 언제 또 1948년, 2008년 때와 같은 '회의'에 참석할지 모르는 일이다. <송은범 행정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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