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조미영의 제주마을 탐방] (7)제주 최대 관광단지 중문동

[2019 조미영의 제주마을 탐방] (7)제주 최대 관광단지 중문동
발길 닿는 곳마다 수려한 풍광… '국제관광지' 매력 여전
  • 입력 : 2019. 08.15(목)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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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6년 군물동산 중심으로 설촌
유래처럼 전해지는 '물 이야기'
온화한 날씨에 풍부한 자연자원
국가 차원 국제관광단지 첫 사례
관광패턴 바뀌며 명성 주춤해도
천제연폭포·나무숲 등 발길 끌어
“긴 안목으로 지역 가치 발현을"



평화로에서 드문드문 만나던 렌터카가 서서히 모여드는 곳이 있다. 예래 입구에 가면 서귀포 신시가지로 가는 일주서로와 중문으로 들어서는 천제연로가 나뉜다. 이때 대부분의 렌터카들은 중문 방향으로 모인다. 늘 이 지점에만 오면 길이 헷갈리는 내게 이런 현상은 좋은 이정표가 되곤 한다. 신호 대기 즈음 렌터카들이 늘어선 줄을 보고 중문이 멀지 않았음을 깨닫고 내가 가야 할 차로를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중문관광단지 내 제주국제컨벤션센터(제주ICC). 사진=ICC 제공

SNS를 통해 신흥 지역들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지만 여전히 중문은 제주의 주요 관광지다.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인프라 시설들을 갖춘 덕분에 여행이 편리하다. 과거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화려한 시절은 갔어도 여전히 중문은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지다.

중문은 서귀포시의 서쪽 14㎞ 지점에 위치한다. 북쪽은 한라산 영실에 닿아있고 남으로는 바다로 이어져 길쭉한 모양새다. 이웃마을로는 서쪽의 예래동과 동쪽의 대포동, 회수동과 경계를 이룬다. 조선시대 제주의 군현 체제가 바뀌면서 서귀는 정의군 우면으로 중문은 대정군 동좌면으로 나뉘었었다. 이후 남제주군 중문면 중문리로 그리고 1981년 서귀포시로 통합되며 중문동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촌은 1586년으로 군물동산에 사람이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물이 귀해 멀리 두어물까지 물을 길러 다니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나가는 스님이 마을 남쪽 300m 지점에 물이 나오는 자리를 알려줘 중물리(僧水里)라 불린데서 유래가 돼 현재의 중문리가 됐다.

중문천 전경. 사진=조미영 작가

중문마을의 물 이야기는 또 있다. 1905년 채구석, 이재하, 이태욱 등을 중심으로 한 마을사람들이 뜻을 모은다. 천제연 폭포의 버려지는 낙수를 이용해 관개수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공사는 3년여에 걸쳐 진행되고 드디어 5만여 평의 논농사가 가능한 땅을 개척해냈다. 이후 1917년부터 1923년까지 2차 관개수로를 완성해 2만여 평의 논을 추가 확보한다. 천제연 폭포에서 지금의 국제컨벤션센터 부근까지 끌어오는 대공사였다. 당시의 여건으로는 힘든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56호로 등록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논농사를 지었던 땅들은 중문관광단지로 편입돼 흔적이 없다.

중문동은 날씨가 온화하다. 거기에 더해 자연자원도 풍부하다. 한라산의 기암괴석 골짜기인 영실에서 시작해 천제연 난대림지대를 거쳐 주상절리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보기 드문 자연풍광을 갖췄다. 이런 조건으로 인해 국가차원의 국제 관광단지로 개발되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천제연폭포와 난대림.

대규모 개발을 앞두고 마을이 술렁였다. 크고 작은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마을이 발전이었다. 토지를 내어주고 이주하는 수고스러움을 택했다. 개발로 마을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8년 토지수용을 시작으로 단지가 조성되고 각종 숙박시설과 골프장, 박물관 등의 위락시설이 들어서며 한때 호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여행 자유화의 여파로 신혼여행객이 빠져나가고 보는 관광에서 즐기는 관광으로 단체 관광에서 개별관광으로 관광의 패턴이 변하며 중문단지의 명성도 주춤한다.

그래도 중문마을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3단의 물줄기를 시원하게 내리 뿜는 천제연 폭포와 그 일대를 휘어감은 나무숲들은 요즘 같은 더위도 잊게 해 줄 만큼 깊은 품을 가졌다. 현재 이곳은 천연보호 구역이다. 원시림의 원형과 희귀종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다.

천제연의 하류를 베릿내(星川)라고 했다. 별이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일 것이다. 베릿내 포구에는 베릿내 마을이 있었다. 올망졸망한 초가가 몽글몽글한 돌들과 어우러지던 아담한 어촌이었다. 지금은 마을 대신 호텔이 들어서 있다. 내 동쪽으로 베릿내 오름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중문앞바다가 내다보인다. 올레 8코스에 포함돼 찾는 이들이 많다.

중문관광단지 개발이 시행된 지 40여년이 흘렀다. 사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계획변경이 있었다. 향후 방향에 따라 중문관광단지와 중문동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중문의 가치를 발현해 내길 바란다. <여행작가>

[인터뷰] 김상돈 주민자치위원장
"중문단지 개발 약속 이행해 마을 발전 이바지되길”


중문동은 많은 자원을 가진 마을이다. 천제연폭포를 낀 좋은 물과 주상절리의 바닷가 그리고 한라산의 계곡까지 멋진 자연과 함께 한다. 날씨도 따뜻하여 농사도 잘 된다. 옛날엔 관개수로 개발로 인해 인근 강정과 더불어 최고의 쌀 생산지로도 명성이 높았다. 지금은 감귤농사가 대신한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 중에는 꾸준한 연습으로 공연에 나갈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춘 팀도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중문 불란지 야시장에서 주말 공연도 열고 있다.

중문관광단지 개발로 마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며 유명세도 타고 이곳에 찾는 사람도 많아 마을이 발전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 아직도 개발이 마무리 되지 않고 묶여 있는 땅들이 많다.

과거 마을사람들이 개발을 위해 헐값에 넘긴 땅들이다. 그런데 여전히 개발은 되지 않은채 울타리만 막아 놓은 것을 보면 답답하다. 중문단지의 개발 약속을 신속히 이행해 마을 발전에 이바지 될 수 있길 바란다.

[인터뷰] 양동석 동장
"마을도 함께 관광활성화 노력"


중문동은 도농복합형 마을이다. 농사를 하는 사람들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혼용돼 살고 있다.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다른 마을에 비해 관광산업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합적인 구조에 맞게 행정을 펼쳐야 한다. 농민들의 어려움도 해결해야 하고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민원도 해결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 민원처리건수가 증가추세다.

마을 자체적으로 관광활성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주변 길가에 코스코스와 해바라기 등을 심어 꽃길을 조성하고 마을 축제를 기획해 개최한다. 중문동의 대표 축제는 칠선녀 축제이다. 10월에 시행되는데 호응이 좋다. 이 외에도 마을 발전을 위해 동차원의 행정지원을 적극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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