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05)애월읍 고성2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05)애월읍 고성2리
상전벽해를 이뤄낸 개척정신의 표상
  • 입력 : 2026. 01.23(금) 02: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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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용어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뽕나무를 키워서 누에에게 먹여 비단을 짜는 실을 뽑는 양잠농업을 위해 개척단지를 만들었는데 두 세대 60년이 지나 뽕나무 밭과 누에들은 사라지고 품격 높은 도농복합형 전원마을로 바뀌었으니 그러하다. 위치는 애월읍의 동남쪽 중산간지대다.

1967년 고성리의 해발 200m 넘는 지역에 120㏊ 정도를 국가시책에 따라 양잠단지로 조성해 첫 해에 20세대가 입주하고 다음해 1968년에 20세대가 입주해 합계 40세대가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살게 됐다. 모든 일을 서로 도우며 취락기반을 형성하고 주로 젊은 부부들이 양잠산업이라고 하는 소득사업에 꿈과 희망을 가지고 오직 개척정신으로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갔다. 새로운 마을을 이루고 양잠농업에 뛰어들어 처음에는 정부의 양잠산업진흥시책으로 큰 호황을 누리며 주민소득이 노력에 상응하는 보람을 얻게 했다. 그러한 상황은 10년도 가지 않아서 산업구조의 변화 발달을 예견하지 못한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으로 양잠산업 생산물 수매가 중단되게 된다. 국가 시책을 하늘처럼 믿고 여기로 이주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고된 노력이 정부의 무책임으로 커다란 좌절의 벼랑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어떤 피해보상도 없이 국가의 배신을 당한 상황. 그 시련과 고통을 꿈과 희망의 붕괴에서 오는 박탈감이었다고 한다.

강순원 이장

양잠단지의 꿈은 무너져도 마을공동체를 이루면서 더 굳건하게 다져진 개척정신은 오기에 가까운 힘을 발휘해 좌절하지 않고 일어나 취락부흥에 더욱 매진했다고 한다. 소득사업들은 복합영농체계로 전환해 농업경쟁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은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에 조성된 도내 6개 개척단지 중에서 유일하게 행정리로 성장하게 되는 신화창조 주역들의 이름, 세대주들을 마을회관 앞에 새겨놔 있다. 청년정신 개척자 신상순, 김대형, 양정부, 김태종, 고병선, 신동진, 박지홍, 고문옥, 고우길, 고한경, 고광필, 강태언, 문신기, 문영길, 김자진, 강인하, 강위룡, 양희경, 강항문, 김용국, 강인종, 고치돈, 고병삼, 신성우, 신태순, 고현수, 고석찬, 고병하, 박순헌, 강인현, 김인택, 이맹성, 강창흡, 강기호, 고정완, 강홍수, 강용호, 변산일, 강철모, 이문효. 이상 40 명이다. 가족을 이끌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전장을 냈던 가장들이다. 마을에 대한 그 어떠한 설명보다 이 분들의 젊은날 개척정신을 후대의 귀감으로 여겨야 하겠기에 고성2리의 매일 만들어가는 역사와 함께 영원히 정신적 뿌리가 돼줄 것이다. 함께 이룩한 정주공간은 돌부리 하나까지도 애정이 갔다고 한다. 공동체적 일체감 또한 커다란 결속력으로 발휘됐던 것은 양잠농업이라고 하는 운명공동체 성격의 도전과제에서 비롯했지만 양잠이 사라진 이후에도 생활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동고동락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좌절 극복의 의지는 커다란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한다. 제주서부지역 대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제주시와 더욱 가까워진 지리적 여건으로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계속하여 입주해옴으로써 정주여건이 확충되고 주민들의 행정욕구는 날로 증가하게 됐다. 이에 주민들은 1996년 6월 양잠단지라고 불리던 마을을 행정리로 신설해줄 것을 행정당국에 청원했고 당시 북제주군이 이 청원을 받아들여 1998년 1월 1일 고성2리라고 하는 독립된 행정리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 외국어고등학교와 원광요양원 등 리 단위 마을이지만 내세울 시설들 또한 많다.

강순원 이장에게 고성2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최고의 교통여건"

평화로를 기반으로 서귀포시나 제주시 서부지역 어디든 자동차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 전원적 주거지역으로 각광 받게 되는 요인 또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문화가 보편화된 시기에 시간성이 부여하는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시각예술가>



극복의 터널
<수채화 79㎝×35㎝>

평화로 확포장으로 발생한 굴다리다. 폭이 넓어서 터널 같은 기분이 든다. 저 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공명을 이루며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은 상징적 느낌을 받았기에 그린 것이다. 강인종 어르신이 21살 나이에 결혼을 하고 개척정신이 투철했던 청년은 아내에게 양잠단지로 이주해서 멋있는 미래를 개척하자고 통보(?)한다. 낭군님의 뜻에 따라 함께 이주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일궈야 하는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면서도 궂은소리 한 번 해본 적 없는 아내의 삶. 성실하고 끈질긴 성격의 남편을 믿고 양잠농업을 함께 하다가 10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정부에서 수매를 하지 않게 되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밀려왔을 때. 마을 아낙네들처럼 앞날에 대한 막막함에 살림살이를 하는 아내는 내색을 못하지만 남편의 표정만 바라볼 뿐. 그러던 어느 날 낙심한 남편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경허난 무사 이딜 옵데강?" 이 말을 들은 남편이 " 좀좀 해영 이서봐. 무신 방도라도 차질거난! "

저 어두운 좌절의 터널공간에서 아직도 간직되어 들려오는 불굴의 의지. 저 공간을 지나서 멀리 보이는 오늘의 빛나는 마을 풍경. 그냥 주어진 모습이 아니다. 양잠농업이 무너졌으니 있을 이유가 없어서 떠날 법도 하지만 그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고야 말겠다는 결기에 가까운 개척자 남편들이 있어서 오늘의 고성2리가 있을 수 있었으며 재도전을 묵묵하게 뒷바라지 했던 아내들의 노고와 함께. 마을의 역사, 그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는 풍경이라 여기면서.



길과 나무
<수채화 79㎝×35㎝>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마을이다. 중산간 지대의 전형적인 특징이겠거니와 설촌 시기의 정취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겨울이지만 짙은 초록잎 나무가 길가로 뻗어 나온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 뽕나무의 그 초록색을 아니로되 저 길을 만들고 수레를 끌며 신바람나게 일하던 청년농부 그 개척자들의 숨결이 느껴져서 그린 것이다. 눈부신 오후의 햇살이 만들어서 길가에 드러누운 긴 그림자. 흔히 '누구의 그림자'라고 하는 표현이 소스라치게 놀란 가슴 속에서 터져나와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한 시절 있었던 기억일지언정 그 열정의 나무는 아직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동차끼리 마주 달려오면 아주 골치아픈 상황이 발생할 정도의 작은 농로가 하나의 기억장치가 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린 것이다. 한해를 살고 가는 누런 겨울 풀잎들과 상록수의 과격한 대비 속에서 얻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파격적인 구도라기 보다는 고의적인 배치다. 초록색 나뭇잎이 화면의 반 이상을 좌우에서 차지하고 그 사이에 어떤 공간적 상황인지 보여주는 구성 속에서 결국 그림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주대종소법에 입각해 나무다. 뽕나무의 초록 잎사귀에 대한 그리움. 마을 안쪽 깊은 곳을 걸어 다니다보면 어찌해 전원주택들을 많이 지어서 살게 되는 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조그만 걸어 나가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그러하다. 주거공간이 자연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묘한 느낌의 마을. 새소리는 그릴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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