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학교] (5)제주서초 3학년 '온 책 읽기'

[책읽는 학교] (5)제주서초 3학년 '온 책 읽기'
책이 손에서 손으로… 함께 읽으며 독서 힘 키워요
  • 입력 : 2019. 10.22(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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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반에서 반으로 서로 다른 8권의 책을 전달하며 함께 읽고 있다. 단순히 책을 보는 것을 넘어 똑같은 책을 읽었다는 공통점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3학년 1반의 독서퀴즈 골든벨. 사진=김지은기자·제주서초 제공

2019 독서교육활성화 프로젝트-책 읽는 학교' 기획을 통해 기자가 던지는 화두는 '왜 책인가'다. 본보는 '함께 읽는 제주, 다시 책이다'를 슬로건으로 총 10회에 걸쳐 도내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는 독서교육프로그램 사례와 책과 함께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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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친구와 의견 나누는 독후활동으로 독서 재미 발견
1~4반 아이들이 같은 책 읽고 '공통분모'로 대화 잇기도
"단어 하나·문장 한 줄에 집중하며 책 읽는 방법 알아가"

"지난번 사회 시간에 위인 '김만덕'에 대해 배웠죠? 이 책을 통해 김만덕의 생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해요."

지난 10일 제주서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 담임 신진영 교사의 말이 끝나자 20여명의 아이들이 다함께 책을 펴들었다. 신 교사도 같은 책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이 한명 한명이 돌아가며 책 읽는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3학년 다른 반 풍경도 마찬가지. 1반부터 4반까지 매주 목요일, 이 시간만큼은 교사와 아이들 모두 책 한 권에 오롯이 집중한다.

다른 게 있다면 각 반 아이들이 저마다 손에 쥔 책 제목이다. 학기마다 서로 다른 책 4권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반 아이들이 한 달간 읽은 책을 다른 반이 받아들고, 그 반이 읽은 책이 또 다른 반에 전달되는 식이다. 올해가 끝날 쯤엔 3학년 모두가 본 책 8권이 한 반 인원 수 만큼 쌓이게 된다. 책은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 미리 골랐다. 제주문화, 한부모·다문화가정 이야기부터 인성교육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3학년 학생들의 책 읽는 모습.

# 함께 읽으니 독서의 재미가 '쑥'

모든 아이가 같은 책을 읽는 일은 독서의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혼자선 책을 읽는 게 졸리고 지루했던 아이들도 친구와 함께한다는 데에서 재미를 찾는다. 3학년 김하은 양은 "전보다 책이 재밌어졌다"고 했고, 김채원 양도 "혼자 책을 읽을 땐 자꾸 다음에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다 같이 읽으니 더 집중하게 된다"며 웃었다.

아이들의 책 읽기는 단순히 책을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책 한 권을 찬찬히 짚어 읽고, 그것을 깊이 이해하는 독후활동으로 이어간다. 독서퀴즈 골든벨, 독서록 작성 등 각 반마다 방식을 다르지만 모두가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고 있다. 그 과정을 아이들이 이끌 수 있도록 하니 활동은 더 활기를 띠었다.

신진영 교사는 "한 달에 3주간 책을 읽은 뒤 마지막 주에 독서퀴즈 골든벨을 열고 있는데, 그 문제를 아이들이 직접 낼 수 있도록 독서 퀴즈함을 만들어 교실 한편에 뒀다"며 "독후활동의 권한을 아이들에게 넘겨주니 전보다 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독후활동 기록 전시.

# 똑같은 책-다른 생각, 공감을 배운다

시간이 쌓이면서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독서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들이 함께 읽은 책을 공통분모로 대화를 이어가면서다. "같은 책을 읽어도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웃기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이은지 양의 말처럼 아이들은 책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다가가는 법을 깨닫고 있다.

교사들에게 와닿는 변화도 크다. 아이들이 멀었던 책과 친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3반 담임인 안창준 교사는 "디지털 세대인 요즘 아이들에겐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낯설다"며 "다 함께 책을 읽으면서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집중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도 보면서 책 읽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책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에서도 전과는 다름이 묻어난다. 신 교사는 "기계적으로 딱딱하게 책을 읽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를 하듯 소리 내고 있다"며 "1학기에 책 4권을 함께 보고 나니 그림이 없는 긴 지문의 글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부쩍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변화에 교사들은 온 책 읽기를 더 넓게 이어가려는 생각을 품고 있다. 올해 아이들이 읽은 책을 다음 해 3학년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신 교사는 "하다 보니 더 많은 학생들이 온 책 읽기를 함께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며 "매년 모든 학년이 책을 구입하기에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내년 3학년에겐 올해 읽은 책을 물려주고, 또 다른 학년에선 새 책을 구입해 함께 읽는 것처럼 이를 점점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왜 책인가?] 신진영 제주서초등학교 교사 "책 읽는 즐거움이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

"선생님, 저는 이제부터 연필을 '연들'이라고 부를 거예요. 또 알아요? 그렇게 부르다보면 '프린들'처럼 '연들'도 사전에 실릴 수도 있잖아요."

어느 목요일 아침, 한 여학생의 다짐에 교실 한구석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난다. 맞장구치는 아이들, 택도 없다는 표정의 아이들, 반박하는 아이들, 자기 생각에 예를 드는 아이들 등 저마다 가지각색의 의견들로 넘쳐난다.

'프린들 주세요'를 우리 반 모두 같이 읽고 난 후 찾아온 변화다. 그림이 한 면에 반 이상을 차지하는 책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에게 처음 글만 빼곡히 가득 찬 책을 집어 줄 땐 왜 이러시냐며 나를 원망도 했지만, 온 책읽기를 한 후에는 동시에 모든 학생이 같은 한권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저마다 한마디씩 느낌을 이야기하기 바쁘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말 속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책 읽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한번 시작하기도 힘든 게 바로 책 읽기이다. 우리가 의도를 가지고 실천하는 여러 행위에는 즐거움이 수반되어야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나 생각한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같은 책을 읽은 우리들 사이에서는 즐거움이라는 공감대가 모든 과정을 관통하고 있었다.

책 속의 인물이 시작한 하나의 일은 우리들의 머릿속에 들어와 온갖 상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는 또 다른 책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제 문단 하나도 버거워 국어책을 잡고 낑낑대던 학생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책 읽기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타인과 공유해보는 것, 또 계속 반추하며 또 다른 책 속으로 빠져드는 것, 그것이야 말로 한권의 책이 자신에게 체득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취재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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