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생명산업인 감귤산업이 올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가을장마와 잇단 태풍으로 일조량이 크게 줄고 많은 양의 비로 감귤 품질이 떨어진 데다 사과·배·감 등과의 가격경쟁에서도 밀리면서 최악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내년 1월부터 농산물산지유통센터(이하 APC)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도가 적용되면서 인력 확충과 함께 농가의 유통비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지난 8~9월엔 이틀에 한 번꼴로 비가 내리면서 극조생감귤의 당·산도가 크게 떨어졌고 출하시기도 다소 늦춰지며 사실상 제값받기에 실패했다. 여기에 노지감귤 출하시기와 맞물려 서로 경쟁하는 구도로 이는 가격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노지감귤 평균 도매가격은 전년보다 15% 낮은 ㎏당 1460원을 기록했다. 출하량이 지난해에 견줘 22% 줄었지만 가격은 되레 역행했다. 9월 잦은 강우와 일조량 부족으로 착색이 지연되고 당도가 낮아 전반적으로 품질이 좋지 않아 가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쳤다. 11월 가격 전망 역시 지난해보다 낮은 ㎏당 1200~1500원선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제주감귤산업은 현실적으로 여러가지의 어려움에 직면한 상태다. 여기에 본격적인 노지감귤 출하시기를 맞아 농가는 물론 유통현장에서도 더 큰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집중 출하기에 APC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전문인력 유출로 인력난은 물론 부패과·상처과 발생에 의한 품질 저하, 유통비 가중 등으로 농가소득 감소는 자명하다.
도내 농가 및 농협 관계자들은 급기야 최근 국회를 방문해 현장의 소리를 담은 건의문을 전달하는 등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없이 농림식품부와 고용노동부와의 실무협의에도 진척이 없어 최후의 수단을 쓴 셈이다.
이들은 건의문에서 제주농업·농업인의 어려움과 1차산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식해 주52시간과 관련해 '근로기준법 제63조(적용 제외)'에 APC를 반드시 포함시켜 줄 것을 간곡히 건의했다. 결과를 지켜보고 있지만 법 시행일인 당장 내년 1월까지 50일 가량 남은 상태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감귤산업의 특성상 특정시기에 막대한 물량이 몰리는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1일 평균 3500t~4500t 가량이 집중 처리돼 APC가 시살상 24시간 가동체제에 들어가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평년의 경우도 정상적인 유통 쉽지 않다. 여기에 실제 초과근무수당 등 월 300~400만원을 받던 숙련된 인력이 월 200만원 이하로 줄면 인력 유출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숙련 인력 충원으로 상품비율도 떨어지고 선과가 늦어지면 부패과 발생도 늘 수밖에 없다. 주52시간 적용시 기존 인력의 1.5~2배가 필요하고 이에 따른 유통비 증가로 소득은 줄며 그 피해는 농가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 올해처럼 가격이 좋지 않은 해에 법 적용이 시행된다면 농가는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감귤농가와 농협이 국회를 향해 마지막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른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를 운운하는 정부와 달리 집중출하하는 감귤 특성을 이해하고 그 힘든 농부의 손을 꼭 잡아주길 바란다. <백금탁 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