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이 기막힌 일을 너랑 내가 잊어버리면 누가 알아줄까?'
최근 개봉한 제주4·3의 비극을 다룬 영화 '한란'의 포스터 문구다. 영화는 1948년 사건 발발 당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숨어 들어간 마을 어른들과, 어미와 떨어져 할머니와 마을에 남아 살아야 하는 어린아이가 할머니마저 토벌대에 죽임을 당하자 어미를 찾아 떠나는 아픈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위태롭게 생존하는 이들의 모습들이 관람하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당시 경찰을 피해 산으로 달아나다 총에 맞아 숨진 작은할아버지와 무장대의 가족을 보살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외가의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당시 20대, 10대였던 분들이다. 4·3의 아픔은 제주사람들의 핏속에 영원히 유전될 수밖에 없는 'DNA'다.
그런데 며칠 전 제주사회를 발칵 뒤집는 일이 발생했다. 다름 아닌 일본군 출신 고(故)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보훈부의 국가유공자 지정이다. 1948년 9연대장으로 부임한 박 대령은 '제주도민 30만명을 모두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한 인물이다. 부임한 지 한 달 열흘 만에 6000명을 체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악랄했다. 묘하게도 부하에게 살해당하는 영화 '한란'의 토벌대 대장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제주사회는 물론 정치권, 사회단체, 노동계 등이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박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선정 철회와 함께 권오을 보훈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보훈부는 "신중한 검토가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권 장관도 곧바로 제주를 찾아 잘못을 인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좀처럼 분노의 불길은 식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
현재 제주시 어승생 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변에 있는 박 대령 추도비에는 '공비 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불행하게도 장렬하게 산화하시다'라고 적혀 있다.
때문에 제주도가 15일 추도비 인근에 '진실의 비'(안내판)를 세운다.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것으로 정부가 2003년 공식 발간한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수록된 내용을 담는다. 진실의 비에는 박 대령을 암살한 손순호 하사의 증언 등도 담긴다. 목숨을 건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우리 역사에 더 조명 받아야 한다.
4·3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영화 '한란'을 보시라.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인 제주공항, 곶자왈, 정방폭포 등 양민들이 숨어살고 죽임을 당한 역사의 현장들이다. 천혜의 관광지라는 이 땅 속에는 이들이 흘린 피와 희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영미 감독은 희생의 땅, 제주 곳곳을 앵글에 담아내며 결코 잊어선 안 될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4·3의 아픔을 결코 '허구'가 아닌,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임을 그려내고 있다. <백금탁 행정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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