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재능기부로 독서동아리 운영독서토론·영화감상, 북카페 방문 등다양한 문화체험하며 즐거운 책 읽기
저청중학교는 올해 처음 학부모와 함께하는 독서문화프로그램 '나에게로 떠나는 책 여행'을 운영하고 있다. 중학생이 된 자녀,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소통하고픈 저청초·중학교 학부모 독서동아리 '화기애애' 멤버 2명의 재능기부로 시작됐다. 희망학생 모집을 통해 7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렇게 9명으로 구성된 저청중 독서동아리의 오롯이 '즐겁게 소통하기'를 모토로 내건 '책 여행'의 막이 오른다.
동아리활동에서 작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있는 저청중학교 학생들의 모습.
# 학년, 이름 벗어나 ‘너와 나’로 만나는 시간
'진지한씨' '회장님' '하늘을 날고 싶은 노란 기러기' '치킨외지인' '시드 케첨' '파란코드 담비' '스타프 루츠' 등등…. 매월 격주 목요일 방과후 독서동아리 시간에 불리는 이름이다.
'닉네임(별명)' 부르기는 작은 학교 울타리라 너무나 친숙한 얼굴들 속에서 동아리 시간 만큼은 학년과 이름을 벗어나 '진짜 나와 너'로 만나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아리 활동 첫 날, 각자의 닉네임이 정해졌다. 롤링페이퍼에 서로에게 느낀 감정 또는 연상되는 이름을 적었고, 마지막에 본인이 불리고 싶은 닉네임을 골랐다. '솔직히 부족한…'이란 독서동아리 명칭도 멤버들의 단어 조합을 통해 탄생했다.
독서 활동을 위해 서로가 관심있는 책을 살펴보고 있다.
'솔직히 부족한…'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요? ▷우리와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 ▷우리만의 이야기 ▷오늘을 바꾸는 우리들 ▷우리와 쓰레기, 동물 등 매월 주제를 정하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도서를 선정해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본 후 그림 작가를 초청해 프랑스 문화 체험과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배우기도 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읽고 우리 주변에 늘 있었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독서토론 시간도 가졌다. 학생인권조례, 학교의 민주주의 등을 살펴보며 '오늘을 바꾸는 우리들'의 모습과 가능성을 배우고, 학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공간인 북카페 등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최근 크리스 조던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함께 본 학생들은 모의재판도 진행할 예정이다.
# '자유롭게+즐겁게' 그러다보면 '+a'
중학교 아이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듣고 소통하고 싶어 시작된 동아리였다. 독서동아리다보니 책을 읽는 기회가 생길 테지만,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연스레 독서의 재미를 알아갔다.
영화를 감상하는 학생들.
닉네임 '회장님'은 "예전에 독서는 혼자하고 끝나는 활동이었는데 책을 읽고 친구,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격주에 한번 하는 동아리 활동에 시험기간에는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을 정도다.
닉네임 '시드 케첨'도 하나의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다보니 독서활동을 공유할 수 있어 더 즐거웠다고 했다.
학생들이 직접 마을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발간한 '사람책'.
학부모 '진지한씨'는 "즐겁게 책 읽고, 영화도 보고, 북카페도 가고, 갤러리도 가고, 그렇게 중산간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저 즐거운 다양한 문화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활동이 아이들 스스로 미처 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고 서로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그래도 처음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의 눈에도 긍정적인 변화로 비춰진다.
'책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아쉬움은 한가득이다.
'진지한씨'는 "학교를 벗어나 더 많은 것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학교수업 시간 이후 활동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고, 외부활동에 대한 제약이 있어 아쉬웠다"며 "할 수 있다면 내년에도 동아리를 이어가 올해 못 해본 일들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 시 쓰는 체력 기르기… 색다른 학교 수업
정규수업에서도 독서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자유학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을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은 '사람책'이 발간됐고, 매주 화요일에는 '창작시집 발간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아침활동시간을 활용해 시집을 읽고 필사를 하고, 교과시간에는 시를 읽고 해석하며 시를 쓰는 체력을 길렀다. 그 과정에서 완성된 아이들의 작품이 담긴 창작 시집이 12월 발간을 앞두고 있다.
김세윤 교사는 "처음 시를 어렵게 생각하던 아이들이 아침활동시간과 교과시간에 병행해 활동하다보니 점점 자기의 생각을 써내려가더라고요.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반복하다보니 자기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서관이 보다 친근해지고, 책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도 변화다. 해보지 않았기에 생각을 표현할 기회가 적을 뿐, 학교가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는 '책 여행'을 이어가는 이유다.
[왜 책인가?] 저청중학교 교사 김세윤
“느리게 흘러가는 만큼 오래 남는 것”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읽느냐만큼 어떻게 읽느냐도 중요하다.
학생들은 손 안의 화면 속에서 많은 글을 읽으며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충분한 독서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교육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 우뚝 서 있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독서교육이라는 등대를 통해 자신의 삶을 항해하는 선장이 될 수 있다. 독서교육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손 안의 화면 속에서 얻은 글들은 빠르게 얻은 만큼 쉽게 사라진다. 반면에 느리게 흘러가는 책은 느린 만큼 오래 남아 있다.
단순하게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것에서 벗어나 책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끝까지 책을 읽으며 읽는 체력을 기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묻고 답하며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말로 책을 읽어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독서교육을 통해 자신의 말로 글을 읽는 법을 배운 학생들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정보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신만의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읽는 학교는 학생들이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돕는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오은지기자
※이 취재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