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가 사회 돌하르방 등
문화경관 변화 과정 담아
미국 털리도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네메스. 그는 1970년대 초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제주를 찾았다. 그 길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풍경은 그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밭 중간 중간에 있는 묘지 때문이었다. "농지가 부족한 제주에서 밭에 묘지가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같은 궁금증은 그를 제주 연구로 이끌었다. 1984년엔 UCLA 지리학과에서 '제주도의 농부 경관'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네메스 교수는 그동안 시대의 흐름에 따른 제주도 문화경관에 초점을 두고 전통문화와 역사를 다룬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해왔다. 2006년에는 제주에서 열린 국제섬학회를 위해 그것들을 모으고 정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엮인 책이 '신비, 성실, 모험의 제주 전통 경관'이다. 70년대 이후 제주섬에 눈길을 두고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본 글이 담겨있는 책으로 표제처럼 신비, 성실, 모험 3개의 장에 걸쳐 사라져가는 제주 전통을 기록했다.
첫장에 실린 신비 편에는 한라산을 '하늘의 숨결을 이어주는 통로'로 봤고 풍수 실천의 결과물인 제주도 풍수 지도를 문화유물로 소개하고 있다. 돌할아버지(돌하르방)에 대한 고찰도 보인다. 그는 제주도 주거지 입구 도로에 쌍을 이룬 돌하르방의 형태, 배열, 기능은 조선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신유가적 관료가 전 영토에 이상적인 사회를 각인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해진 계획과 시도로 해석했다.
성실 편에는 제주 사람들의 건전한 정신과 결속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듬돌에 주목했다. 돼지우리 변소(돗통시)는 기술을 그다지 적용하지 않고 경작을 하는 토지에 적합한 장기적인 투자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과거의 농업 활동에 포함된 지혜를 드러낸다고 했다. 경운기를 트로이 목마에 빗대며 제주도의 가난한 농부들이 과거로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미래는 빼앗겼다며 근대화 과정 초기 경제 성장의 어두운 면도 들여다봤다.
모험 편에는 1653년부터 1930년대 중반 사이에 제주도를 방문한 유럽과 미국인 여행자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헨드릭 하멜, 지그프리트 겐테 등으로 이들은 실제로 제주의 경관을 보고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철자법은 약간씩 다르나 이들 모두 제주도를 '퀠파트'로 표기해 놓았다.
역자인 권상철 제주대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네메스 교수가 제주를 제주인보다도 사랑한 사람이 아닐까 여겼다"며 "제주의 가치를 찾아내고 사랑한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제주를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 총서. 푸른길. 1만6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