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이상 체험세대 8명
4·3 시기 처절했던 일상
"참나무 줄기 그런 거 해서 깔깔한 보리쌀에 넣어서 만든 죽 우리한테 줘. 그런 거 동생은 안 먹었어. 난 살려고 하니까 먹어지는 거라. 아버지도 없으니까 남들처럼 벌어올 수도 없고. 다 굶어 죽을 건데 산 것도 기적이지."
1938년생으로 제주 4·3 당시 제주읍 봉개리에 거주했던 강숙자 할머니. 아버지는 대전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고 막내 여동생은 굶어 죽었다. 이모 둘도 희생당했다. 그는 "무사 경 죄어신 사람들을 죽여"라며 "4·3사건 생각만 하면 징글징글하다"고 말한다.
강숙자 할머니처럼 4·3의 그날과 그날 이후를 간신히 헤쳐온 제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한권의 책으로 묶였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제주4·3연구소에서 4·3생활사총서 1권으로 내놓은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이다.
구술채록집에는 8명의 사연이 담겼다. 그들은 1922~1938년생으로 4·3무장봉기가 발발한 1948년을 기준으로 27~11살이었다. 구술자들은 어느덧 여든 살이 넘었다. 4·3을 건너온 이들이 고령으로 하나둘 세상을 뜨거나 기억력이 흐릿해지는 현실에서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값지다. 누구하나 기구하지 않은 삶이 없고 여성으로서 겪었던 아픔은 더했다.
채계추 할머니는 4·3 때 밀가루 배급을 받으러 갔다가 진통을 느꼈다. 말 구르마(달구지)를 얻어타고 불타버린 집터에 임시로 만든 움막으로 들어가자마자 아기를 낳았다. 산후에 피를 맑게 한다는 메밀가루는 구경도 못했고 바닷고기가 없어서 자리를 구해 국을 끓여 먹었다. 이승례 할머니는 북촌리의 오늘을 일군 건 동네 여성들의 물질이라고 말했다. 강숙자 할머니는 겨울철 살이 끊어질 정도로 죽을락 살락 물질을 해 재산을 모으고 집터를 샀다. 이문자 할머니는 문도 없이 가마니 하나 걸친 채 살아야 했던 나날을 떠올렸다.
4·3을 연구하는 허호준 기자는 책머리에 실린 '제주4·3과 여성의 기억'에서 "4·3을 마주할 때 상상할 수 없는 처절한 역사의 현장을 목도하고, 경험한 이들의 고통과 기억을 공감하지 않고서는 4·3의 역사는 물론 4·3체험세대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4·3시기 여성들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4·3의 전체상에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도서출판각. 1만5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