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이분법 인식 전환 등
성소수자 인권 확장 주문
여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있다. 단지 남녀 화장실을 구조상 합쳐놓은 공용화장실을 일컫는 게 아니다. 성별에 대한 전제없이 개별적 공간으로 분리된 형태의 1인 화장실이다. 성별을 넘어 장애를 갖고 있든 아니든, 동반 자녀가 있든 없든 누구나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등에는 공공기관과 기업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과 캘리포니아주는 단독 화장실의 성별 구분을 없애도록 하는 법령을 만들었고 대만은 정부 차원에서 성별 구분없는 화장실 설치 사례와 관련 법제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성별 이분법에 갇힌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는 여와 남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하고 이는 결코 바뀌지 않으며 선천적이고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한국성소수자연구회가 펴낸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는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하고 이들을 비정상으로 낙인찍은 한국의 법·제도적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의 공세 속에서 세계적으로 축적되어온 연구들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교육학, 법학, 보건학, 사회복지학, 사회학, 신학 등 여러 학문 분야 연구자들이 집필에 참여해 면담 자료와 풍부한 통계를 들며 성소수자 인권이 존중받는 미래를 향한 제언을 담았다.
책은 젠더와 성소수자를 시작으로 동성애, 트렌스젠더, 성소수자의 노동, 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성소수자와 학교 교육, 소수자의 가족구성권, 퀴어운동과 민주주의, 성소수자 인권과 법적 쟁점, 퀴어문화축제 등을 차례로 다뤘다. 마지막 장에는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를 주제로 대담을 실었다.
이미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학문적 결정을 공표했고 동성애를 병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학술적인 증거도 계속 쌓여왔다. 이를 통해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고 우리 모두는 성적 다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한국성소수자연구회는 혐오의 시대 한가운데 성소수자가 있는 현실을 짚으며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구성원 한명, 한명의 인권이 승인되어온 역사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고 했다. 창비.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