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이상세계 향한 열망, 현실에 놓인 절망

[책세상] 이상세계 향한 열망, 현실에 놓인 절망
거페이 ‘강남 3부작’ 심규호·유소영 번역
  • 입력 : 2020. 01.17(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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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장 이남 강남 공간적 배경
이상적 삶에 대한 욕망 그려

중국 창장(長江) 이남 지역의 총칭을 뜻하는 강남(江南). 거대한 창장이 흐르면서 봄과 여름, 겨울까지 비가 내리는 강남은 몽롱한 분위기, 우거진 수풀, 복사꽃과 매화 등 온갖 꽃들, 쌀과 고기가 넘쳐나는 풍요한 삶으로 표상된다.

장쑤(江蘇)성 출신으로 칭화대학 중문과 교수인 거페이(格非)는 어린 시절을 창장 남쪽의 작은 마을에서 보냈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강북 외할머니 댁에서 새해를 맞이한 일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외할머니 초가 앞 대나무 숲에 몰려와 그를 보며 외쳤다. "강남 사람이 왔어!" 기쁨과 신선함이 느껴지던 그들의 말투가 2015년 마오둔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이른바 '강남 3부작'을 낳았는지 모른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구상해 2011년 완성한 대작인 '강남 3부작'이 제주국제대 심규호 석좌교수와 제주대 통역대학원 유소영 강사의 번역으로 나왔다. '복사꽃 그대 얼굴'(심규호 역), '산하는 잠들고'(유소영 역), '강남에 봄은 지고'(유소영 역)로 앞서 중국 문학 작품 등을 60~70여 권씩 국내에 소개해온 역자들의 노고가 전해진다. 1부는 '복사꽃 피는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역자에 의해 출간된 적이 있지만 2~3부는 이번에 처음 우리말로 옮겼다.

3부작은 강남을 공간으로 저마다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주인공 남녀의 이상적인 삶 또는 사회에 대한 욕망과 절망적 회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연계된다.

이 소설은 거페이의 말처럼 강남 퇴직관리 집안의 아가씨인 루슈미와 혁명당원 장지위안의 애틋한 사랑 등 애정을 소재로 했으나 이상세계에 대한 열망, 실현되지 못하는 유토피아가 핵심 주제다. 주인공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고 끝내 비극으로 치닫는다.

심규호 교수는 20세기 초엽(1부), 1950~60년대(2부), 1978년 개혁개방 이후(3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을 '강남몽(江南夢)의 연대기'로 불렀다. 단순히 근대에서 지금까지 100년의 역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작중 인물들이 꿈꾸는 이상세계가 고대부터 이어져온 이상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봤다. 역자는 '산하는 잠들고'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며 비록 꿈이지만 투쟁, 부패, 탐욕조차 없는 사회를 그려냈듯, 우리 역시 여전히 보다 이상적인 곳을 만들기 위해 달려가는 중이 아닐까라고 했다. 더봄. 각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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