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6)탐라팔경(耽羅八景)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6)탐라팔경(耽羅八景)
“군자를 먹이기 위해서라고 하나 곤밥마저 달지 않구나”
  • 입력 : 2020. 04.20(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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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팔경·영주십경 시·서·화와 민화에 등장
공귤·답전·직량·채복·목자·답한 등 탐라팔경
땅이 척박해서가 아니라 부세·호역에 힘들어

마소 대신 좁씨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하는 섬비질

#영주십경의 유래 탐라십경도

영주십경(瀛州十景), 곧 '신선이 사는 물가의 아름다운 10가지 경치(landscape)'를 말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제주도의 아름다운 관광 경관으로 상징화되었다. 이 영주십경은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이익태(1633~1704)의 '지영록(知瀛錄)' 탐라십경도(耽羅十景圖)에서 유래한다. 이익태 목사는 재임하면서 두 번의 변방 제주의 군기 상황을 점검하는 순력(巡歷) 때 사람의 자취가 드물고 볼만한 곳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사적(事跡)을 적어 10폭 병풍을 만든 것이 탐라십경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탐라토총도(耽羅都摠圖), 산방(山房), 백록담(白鹿潭), 영곡(瀛谷) 등 네 점이 전하고 있으며, 다른 판본의 탐라십경도가 일본에 남아있는데 탐라토총도(耽羅都摠圖), 명월소(明月所), 취병담(翠屛潭), 산방(山房) 등 네 점 등 모두 8점이 전해온다. 300여 년 전 이익태 목사의 '탐라십경'은 조천관(朝天館), 별방소(別防所), 성산(城山), 서귀포(西歸浦), 백록담(白鹿潭), 영곡(瀛谷), 천지연(天地淵), 산방(山房), 명월소(明月所), 취병담(翠屛潭)이다. 제주목사 였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제주팔경(濟州八景)과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2)의 탐라십경이 있고, 현재 우리에게 회자 되는 영주십경은 매계(梅溪) 이한우(李漢雨, 1823~1881, 초명은 漢震)가 품제(品題)한 것으로, '성산일출(城山日出)', ‘사봉낙조(紗峯落照)’, ‘영구춘화(瀛邱春花)', '정방하폭(正房夏瀑)', '귤림추색(橘林秋色)', '녹담만설(鹿潭滿雪)', '영실기암(靈室奇巖)', '산방굴사(山房窟寺)', '산포조어(山浦釣漁)', '고수목마(古藪牧馬)'가 있다. 이 품제로 그려진 그림으로는 20세기 초 '춘원’(春園) 정재민(鄭在民)의 '영주십경도(瀛洲十景圖) 십곡병(十曲屛)'이 있으며,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져 풍속화적인 의미가 엿보이기도 한다. 20세기 중반에는 그대로 박생광의 '영주십경도(瀛洲十景圖)'가 화첩으로 그려졌다. 영주십경에는 10곳의 경관을 그리고 좌목에는 그 곳에 얽힌 지형지세, 전설, 개인의 감흥을 기록하고 있다.

감귤 조공을 위해 포장하는 모습, 탐라순력도

#문인(文人) 정신세계의 투영, 소상팔경

상징(symbol)은 그 시대의 사상이나 정신을 나타낸다. 영주십경은 조선시대 선비 문인들의 의식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고 그것이 시·서·화라는 예술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교 이전에 자연은 신의 영역, 즉 종교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공자가 등장한 이후부터 인간은 자연을 종교적인 태도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입장에서 자연을 독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은 인격의 도야(陶冶)를 위한 대상이고 심미의 주체(subject)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가의 자연관은 "자연 만물이나 자연 현상에 대해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 결과 자연 만물이나 자연 현상을 객관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자연 산수를 심미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마 씨아오루, 2019). 결국 인간은 자연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존재로 하늘, 땅과 함께 삼재(三才)가 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연과 교감(communion)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의 남쪽 소수(瀟水)와 상수(相水)가 만나는 곳의 빼어난 여덟 곳의 경치로 시·서·화의 소재가 된 것이 우리나라 고려 명종(明宗, 1171~1197) 연간에 들어오면서 시와 그림으로 유행하였다. 이 영향으로 고려 후기에는 송도팔경(松島八景)이, 조선시대에는 자주 소상팔경이 그려졌으며, 지방의 빼어난 경관을 지정하면서 관동팔경(關東八景), 영주십경 등 문인들의 시·서·화와 민중들의 민화에도 표현되었다.

전복을 두 손에 든 잠녀

#리얼리즘 시선의 탐라팔경(耽羅八景)

영주십경은 본래 소상팔경의 맥락에서 선비 문인·사대부 유가(儒家)들이 자연을 보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탐라팔경(耽羅八景)'은 그 소재로 보아 조선시대 일상풍속에 대한 삶을 말하고 있는 리얼리즘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실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것에 인간적인 애정을 부여하여 당대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휴머니즘적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탐라팔경'의 지은이는 말미에 辛卯仲 禮下 李體廷 稿라고 한 것은 1891년에 예하 이체정이라는 사람이 당시 제주도민들이 뽑은 독특한 풍속을 정리한 것이다. '탐라팔경'의 소재들은 ▷공귤(貢橘):귤을 바치다 ▷답전(踏田):밭밟기 ▷직량(織凉):양태짜기 ▷채복(採鰒):전복따기 ▷목자(牧子):소·말테우리 ▷답한(沓漢):논밭지기 ▷저가(杵歌):절구질 소리 ▷급수(汲水):물긷기 등 여덟 가지 제주 사람들의 옛 일상의 노동을 말하고 있다. 민중들은 예나 지금이나 땅이 척박하다고 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부세와 호역(戶役), 신역(身役) 담당의 가렴주구한 현실 때문에 힘들어 했다.

물허벅 진 제주의 비바리. 1890년.

▷공귤(貢橘):귤을 바치다

달고 신 것 모두 열매 맺어 자못 임금님께 바쳐지네, 멀리 봉래전을 생각해보면 낱낱이 그 향기를 나누어 주겠다(甘酸齊結實, 聊以供君王, 遙想蓬萊殿, 恩頒箇箇香).

▷답전(踏田):밭밟기

토질은 거칠고 힘이 없으니, 밟아서 뿌리를 붙게 하네, 말과 소는 채찍을 알아, 테우리들의 말뜻을 알고 있구나(土性鹵無力, 踏而堅着根, 馬牛鞭旦叱, 如解牧人言).

▷직량(織凉):양태짜기

여공들은 양태를 짤 줄 알아, 누에치는 일보다 갑절의 효과, 한 달 동안 노는 일 없이, 종횡으로 부지런히 손을 놀리네(女工織凉竹, 事半倍천桑, 不日圓如月, 縱橫手努忙).

▷채복(採鰒):전복따기

위태롭구나 전복 따는 여인이여, 벌거벗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평생의 괴로움 가련하지만 어진 이는 차마 먹지 못했네(危乎採鰒女, 臨海裸身投, 隣彼生涯苦, 仁人忍下喉).

▷목자(牧子):소·말테우리

궁궐에 바치는 세공마는, 테우리들의 공이라지만, 천한 일이라 사람들이 피해버려, 열 집에 서너 집은 비었다네(天閑歲貢馬, 牧子是爲功, 役賤人多避, 十居三四空).

▷답한(沓漢):논밭지기

일 년 내내 밭 갈고 거두지만, 바치는 일을 어찌 감당하는고, 비록 군자를 먹이기 위해서라고 하나 곤밥마저 달지 않구나(終歲耕而獲, 稟供何以堪, 雖云君子養, 玉食靡爲甘).

▷저가(杵歌):절구질소리

절구질소리 수심차고 괴롭게 들리지만, 달 아래 여인은 아름답구나,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탐라의 풍속 전해오누나(杵歌愁苦發, 月下如嬋姸, 如怨又如慕, 耽羅俗尙傳).

▷급수(汲水):물긷기

종신토록 괴로움 당하는 건, 물긷는 군인과 같음이 없다, 허벅지고 굽은 곱추같이 다녀야 하니, 메추라기나 고니처럼 근육이 힘 들구나(偏苦終身役, 無如汲水軍, 負箇來구루, 순鵠勞其筋).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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